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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일 (10월 11일 금요일) 사리아에서 포르토마린까지 2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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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뉴라이프교회 작성일13-10-11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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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무척 쌀쌀하다. 사리아에서 몇가지 필요한 것들을 샀다. 중국사람이 운영하는 바자르라는 곳에서 장갑 두컬레, 신발 깔창을 샀다. 2유로하는 깔창은 처음에는 느낌이 좋지만 곧 다시 발바닥이 딱딱하게 느껴진다. 앞으로도 한번 정도는 다시 새것으로 바꿔야 될 것 같다.
약국에 가니 호랑이 고약이 있어서 샀다. 미국에서 가져온 벤게이가 다 떨어져서 스페인 것을 하나 더 샀는데 그것마저 다 사용했다. 매일 아침 양말을 신기 전 발과 다리에 바르고, 또 쉴 때 다시한번, 자기전에 또 바른다.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호랑이 고약을 사용하니 냄새가 온 방에 진동한다.
단단히 무장을 하고 사리아를 떠났다. 이제까지 눈으로만 봤던 산안개 속을 걸었다. 조금 걸으니 머리에도 배낭에도 산안개 물기로 축축하다.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순례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100km를 걸으면 순례증서를 주기 때문에 스페인 사람들이 사리아에서 부터 산티아고까지 걷는다고 남편이 이야기했다. 이렇게 시작하시는 분들이 언젠가는 산티아고 길을 다 걷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름도 나와있지 않은 작은 마을들을 지나는데 군데 군데 도네이션이라는 작은 박스와 함께 요기할 수 있도록 간식거리들이 놓여있는 곳이 있었다. 우리도 아침에 과일만 먹고 출발한터라 한군데 들려 요기를 하고 도네이션을 했다. 어제보다는 좀더 빠른 걸음으로 걸을 수 있었다. 약 14km를 지나니 점심때가 되었다.
길 돌담위에 할머니 두분이 너무나도 귀여운 모습으로 앉아서 점심을 드시고 있었다. 발걸음을 멈춰 어디에서 오셨는지와 연세를 물으니 오스트렐리아에서 오셨고 21살이라고 대답하셨다. 산티아고 길에서 점점 젊어지고 있다고하시면서... 옆에 4분정도 늦게 태어나 동생이 된 분이 64세라고 말씀하셨다. 돌담위에 앉아있는 64세의 쌍둥이 할머니... 아마 산티아고 길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산티아고의 길은 여러가지 다른 환경의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색이 된다. 불란서에서, 폴란드에서, 독일에서, 뉴질랜드에서, 오스트렐리아에서, 스위스에서, 슬로바키아에서, 헝가리에서, 이태리에서, 나이지리아에서, 캐나다에서, 일본에서, 한국에서, 미국 여러 지역에서, 캘리포니아에서 온 우리까지... 우리는 찬양과 성경이야기로 산티아고 길을 채색한다.
할머니들을 뒤에 두고 조금가니 예쁜 카페가 나왔는데 영어로 메뉴가 적혀있었다. 우리가 지금 다니고 있는 갈리시아 지방사람들은 약간 영어를 할 수 있다는 말이 정말이었다.
송아지 고기 햄버거를 시켰는데, 하나는 미국에서 파는 햄버거 같고, 다른 하나는 햄버거위에 계란후라이를 올려놓고 노른자가 보이도록 빵에 동그란 구멍을 뚫어놓았다. 주인이 케찹하고 머스터드까지 주었다. 행복한 점심이었다. 남편에게 잘 먹여줘서 오늘 오후는 신나게 걸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멀리 오늘의 목적지 포르토마린이 보인다. 오늘은 아침 8시에 시작해서 오후 3시경까지 약 23km를걸었다. 30일째를 걸었다. 하루도 쉬지않고 걷게 해주셨다. 변화무쌍한 날씨를 통해 인생을 배운다. 어떤 날씨이든 걷는데는 장단점이 있다.
우리의 인생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인생의 날씨를 우리들이 경험하고 있든지 간에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걸으면 더 쉽게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고 그 곳에서 감사를 드릴 수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외할머니
산티아고 길 아침 조그만 성당 옆길에서
키 작은 할머니 한분이 걸어 나오신다
불현듯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오버랩된다
늘 교회를 오고 가시던 외할머니
이십대에 과부가 되어
평생 홀로 사시며
딸들 아들 집에 붙어 사시며
주님 의지하고 기도하시던 분
젊어서는 화촌 외갓집 지키며
시어머니 모시고 일군들 밥상 차려주시고
해남 장날이면 우설재 고개넘어
장 보아 보따리 머리에 이고
먼 길을 외로이 걸어 오시던 분
방죽 길 따라 오솔길 이십리 걸어
빠짐없이 교회를 다니시던 외할머니
나이드셔서 외아들 집에 함께 사시려고
시골 집 정리하시고 도시로 가셨다
그 때 노인들이 다 그러하셨듯
평안함 보다는 불편한 삶을 사셨다
그럴수록 믿음은 더 깊어져
성경 책 손에서 놓지 않으시고
쇠약해진 눈 거의 보이지 않아도
어두운 길 걸어 늘 새벽 기도 다녀 오셨다
한번은 발을 헛디뎌 넘어지셔서
큰 일 날뻔 한적도 있었다.
큰 손자인 나에게 잘 되라고
잔소리도 많이 하시고
밥도 차려 주시고 기도도 많이 해 주시던 분
너는 커서 외국을 많이 다닐 것이라고
예언적인 말씀을 해 주시던 외할머니
내가 목사되어 처음 한국 방문해서
용돈 드리고 절하고 뵈었을 때
외손자를 목사님이라고 존대어를 쓰시며
자랑스럽게 기뻐하시던 외할머니
구십세로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 조차 참석하지 못한 죄스러움이 있다
한국 나갔을 때 모셔진 공원 묘지에 들려
고개 숙이고 감사의 마음을 드렸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시골 마을 노인들을 마주칠 때
외할머니 같은 우리 교회 노인 분들이 떠오른다
나이가 가장 많으신 추 권사님 이 권사님
여러 권사님들 모습이 겹쳐진다
나를 사랑해 주고 아껴주고 기도해 주시는
외할머니 같고 어머니 같은 고마운 분들이다
건강하시기를 두손 모아 기도하며
그 분들의 기도가 상달되어
자녀들이 우리 주님 안에서 잘 되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