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역
- Ministry
해외선교보고
2013 여름 단기선교 소식 (키르키즈스탄, 인디아, 러시아)
페이지 정보
작성자 뉴라이프교회 작성일13-02-09관련링크
본문
(제8신, 8월 17일 토요일)
모스크바 외곽 집시 마을
8월 오후 따가운 태양 밑에서
모스크바 외곽 집시 아이들을 모아놓고
미국에서 간 우리 아이들이
'Set Me Free' 스킷을 하며 땅 바닥에 몸을 던진다
아이들은 큰 눈망울을 굴리며 진지하게 본다
끝나자 알았다는듯 작은 손으로 박수를 친다
모스크바 외곽 집시 아이들을 모아놓고
미국에서 간 우리 아이들이
'Set Me Free' 스킷을 하며 땅 바닥에 몸을 던진다
아이들은 큰 눈망울을 굴리며 진지하게 본다
끝나자 알았다는듯 작은 손으로 박수를 친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게임을 하며 뛰논다
아이들이 서로 손잡고 원을 그리며
어떤 아이들은 우리 아이의 목에 매달린다
8살 가량 남자 아이 중 제일 짓궂은 아이의
모습에 어렸을적 내 모습을 반영해 본다
도시 고속도로 높은 소음 차단 벽
분리된 안쪽으로 누더기를 붙여 놓은듯한
움막들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시 마을
아빠로 보이는 젊은 남자는 웃통을 벗고 맨발에
충혈된 눈으로 담배 연기를 내 뿜고 있다
분리된 안쪽으로 누더기를 붙여 놓은듯한
움막들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시 마을
아빠로 보이는 젊은 남자는 웃통을 벗고 맨발에
충혈된 눈으로 담배 연기를 내 뿜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장래를 생각해 보았을까
이 아이들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을까
이 마을에는 꿈을 가르치고 심어 줄 학교도 교회도 없다
눈이 큰 아이들의 해맑은 웃는 얼굴 뒤로
갖지 말아야 할 무거운 절망을 느낀다
집시 사역을 하는 카티야 라는 젊은 자매 선교사가
매주 월요일 마다 와서 3 년째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이 자매가 아이들을 사랑하며
말씀을 가르치며 기도하고 있으니
조금의 희망을 발견한다
초창기 한국 선교 무렵 다는 아니지만
가난하고 못배우고 운명에 매어 살던 사람들이
선교사를 만나 예수 믿고 변화되어
타고 난 운명이 바꾸어지고
축복스런 삶의 이야기를 남겼듯이
가난하고 못배우고 운명에 매어 살던 사람들이
선교사를 만나 예수 믿고 변화되어
타고 난 운명이 바꾸어지고
축복스런 삶의 이야기를 남겼듯이
헝가리에서 집시 사역을 하며 교회를 세우고
집시 아이들 열명을 자기 집에서
돌보며 제자 훈련하며 키우겠다는
꿈을 갖고 밝은 얼굴로 부지런히 일하는
친구 박완주 선교사 부부가 자랑스럽다
겨자씨 작은 씨가 큰 숲을 이루고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룬다는 말씀대로
하나님 나라는 이 꼬방동네 집시 마을에도
보이지 않는 강력한 힘으로 이미 싹트고 있지 않은가
( 2013년 여름 해외 단기선교 마지막 날, 모스크바에서 집시 사역을 마치고)
================================================
(제7신, 8월 12일 월요일)
샌피터스버그에서 두번째 날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허술한 건물, 허술한 정도가 아니라 폐허된 것 같은 건물 속에 너무나도 깨끗한 가정집같은 호스텔에서 기분좋게 잠을 잘잤다, 아침에 근방에 있는 마켓에 가서 식빵과 버터를 샀다. 어젯밤에 산 시리얼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9시 30분경에 예배를 드리고 10시 30분에 17인승 관광버스를 타고 푸쉬킨 빌리지로 향했다. 어제 저녁까지도 영어가이드가 없다고 해서 고민했는데 하나님께서 영어가이드를 보내주셨다.
푸쉬킨 빌리지의 중심은 여름 궁전이었다. 화려한 로코코 건축 양식을 볼 수 있었다. 부와 힘을 과시하기 위한 과장된 치장은 괜히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좋은 가이드를 보내주셨고 그의 지식이 우리에게 많은 역사를 알려주었다. 전쟁과 혁명, 그리고 공산주의의 붕괴를 겪는 나라의 아픔을 자신의 이야기와 어울려 잘 설명해주었다.
그는 우리 아이들의 착함과 친절함에 감동되어 오버타임까지해가며 잘 인도해 주었다. 그가 소개한 전통적인 러시아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고 김성균 집사님 가정에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저녁값을 지불해주셨다. 식사를 하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형제 자매처럼 사랑하고 아끼면서 서로를 돌보는 모습은 진정한 크리스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저녁 9시에 배를 타고 저녁 관광을 하고 (브릿지가 올라가는 것을 본다고한다) 호스텔에서 가서 맡겨놓는 짐을 찾아서 기차역으로 갈 예정이다. 이곳에서 30분 정도거리는 그냥 걸어다닌다. 이제 우리도 걷는것에는 이력이 난 것 같다. 아이들도 잘 걷는다. 오늘 저녁 기차 여행은 어떤 새로움이 기다리고 있을까? 한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시끄럽게 떠드는 젊은 남녀들을 만나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나더라도 감사하면서 잠을 청할려고 한다. 내일 오전에 모스크바에 도착하여 오후에는 집시 사역을 할 예정이다.
마지막 날에 사역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모스크바 행 야간 열차
밀폐된 침대칸 작은 창문 틈으로
눈부신 아침 햇살이 부서져 들어온다
아침 6시 만물이 깨어나고 있다
0시 40분 상트페테르부르그를 출발한
기차는 적막을 가르고 밤새 지치지 않고 달린다
눈부신 아침 햇살이 부서져 들어온다
아침 6시 만물이 깨어나고 있다
0시 40분 상트페테르부르그를 출발한
기차는 적막을 가르고 밤새 지치지 않고 달린다
55개 좁은 간이 침대 마다 사람들은 아직 잠자고 있다
피곤한 육신을 일으켜 창문 커튼을 조금 젖힌다
창밖 끝없는 푸른 나무 숲은
햇빛을 반사하여 살아 움직이고
호수 표면은 거울 처럼 깨끗하고 평화롭다
피곤한 육신을 일으켜 창문 커튼을 조금 젖힌다
창밖 끝없는 푸른 나무 숲은
햇빛을 반사하여 살아 움직이고
호수 표면은 거울 처럼 깨끗하고 평화롭다
열차 안 간이 매점에서 파는 커피 한 봉지를 사
오래된 쇠로 된 물통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커피가루를 젓는다
커피 향으로 잠자던 후각을 깨우며
한 잔의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
덜 깨었던 세포 감각이 살아나고
멍했던 정신 돌기가 돋우어지며 맑아진다
한 잔의 고마운 커피여
오래된 쇠로 된 물통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커피가루를 젓는다
커피 향으로 잠자던 후각을 깨우며
한 잔의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
덜 깨었던 세포 감각이 살아나고
멍했던 정신 돌기가 돋우어지며 맑아진다
한 잔의 고마운 커피여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여름 궁전 자신 만을 위해 지은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이동하여
한 잔의 진한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는
캐트린 여제의 행복을 떠 올린다
화려하게 꾸민 궁전 치장한 귀족들 파티와 수다는
밤새 다 흩어져 멀리 날아가 버리고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이동하여
한 잔의 진한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는
캐트린 여제의 행복을 떠 올린다
화려하게 꾸민 궁전 치장한 귀족들 파티와 수다는
밤새 다 흩어져 멀리 날아가 버리고
새벽 이슬 창조주의 은총을 받은
있는 그대로 나무들 정원 꽃들이 선사하는
자연의 조용함과 평화가 커피 한잔과 함께
여왕의 하루를 풍요롭게 시작하게 한다
다니엘서 성경을 읽고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무릎꿇어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전능하신 주님 당신의 하인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기차는 아직 달리고 있다
백년 전에 놓았을 철도를 따라 계속 달린다
이렇게 놓여진 코뮤니스트 소비에트 철도를 따라
많은 사람들이 사연을 안고 달렸으리라
아우슈비츠로 가는 줄 모르는 무심한 유태인들
매서운 눈보라 치는 추운 겨울 우즈베키스탄으로
중앙 아시아로 실려 강제 이주되는 고려인들
스탈린 시대 시베리아 강제 노동소로 끌려가는 정치범들
그리고 이제 자유를 누리는 러시아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꿈과 희망을 안고
노인은 노인대로 회상을 안고 달리는 기차 안에서
여행객으로 여유롭게 창 밖을 응시한다
러시아가 가장 사랑하는 시인 푸슈킨의 시
한구절이 떠오른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경건한 삶의 지혜를 육중한 기차 바퀴는 쉬임없이 반복하며
일정한 속도로 힘있게 빠르게 지치지 않고
기차는 인생과 함께 사람과 함께 계속 달리고 있다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꿈과 희망을 안고
노인은 노인대로 회상을 안고 달리는 기차 안에서
여행객으로 여유롭게 창 밖을 응시한다
러시아가 가장 사랑하는 시인 푸슈킨의 시
한구절이 떠오른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경건한 삶의 지혜를 육중한 기차 바퀴는 쉬임없이 반복하며
일정한 속도로 힘있게 빠르게 지치지 않고
기차는 인생과 함께 사람과 함께 계속 달리고 있다
======================================
(제6신, 8월 11일 주일)
모스크바에서 새벽 1시 출발하는 야간 열차를 타고 8시간 걸려 아침 9시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모두들 간이 침대에서 잠을 자서 그런지 건강하게 상쾌한 아침을 맞았다. 비가 오고 있었다. 기차역 근방 조그만 유스 호스텔에 짐을 맡겼다.
간략하게 아침식사들을 했다. 물가, 음식 값이 비싸다.
12시에 펜테코스탈(오순절)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드리고 난 후 지하철로 에르미타주 박물관으로 향하였다. 모스크바에 이어 러시아 2대 도시로 도시 전체가 석조 건물로 아름다운 곳이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잘 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볼만한 곳이 많은 도시이다.
12시에 펜테코스탈(오순절)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드리고 난 후 지하철로 에르미타주 박물관으로 향하였다. 모스크바에 이어 러시아 2대 도시로 도시 전체가 석조 건물로 아름다운 곳이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잘 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볼만한 곳이 많은 도시이다.
# 상트페테르부르그
Saint petersburg 그 이름은 도시의 수호성인인 성 베드로(Peter)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러시아를 유럽의 제국으로 만들고자 불타올랐던 표트르 1세(피터대제)가 도시를 건설했다. 처음엔 단지 발틱 해 연안의 늪지대일 뿐인 음침한 섬들 위에 도시를 건설한다고 했을때 모두 비웃었다고 한다. 표트르 대제는 오두막에 기거하면서 노동자들을 독려했고 건축 자재를 조달하기 위해 전 러시아에 석조 건축을 금지 시킬 만큼 몰두 하여 마침내 '북쪽의 베니스'라 불리우는 상트페테르부르그를 완성하였다.
Saint petersburg 그 이름은 도시의 수호성인인 성 베드로(Peter)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러시아를 유럽의 제국으로 만들고자 불타올랐던 표트르 1세(피터대제)가 도시를 건설했다. 처음엔 단지 발틱 해 연안의 늪지대일 뿐인 음침한 섬들 위에 도시를 건설한다고 했을때 모두 비웃었다고 한다. 표트르 대제는 오두막에 기거하면서 노동자들을 독려했고 건축 자재를 조달하기 위해 전 러시아에 석조 건축을 금지 시킬 만큼 몰두 하여 마침내 '북쪽의 베니스'라 불리우는 상트페테르부르그를 완성하였다.
상트페테르부르그의 최고 보석은 역시 에르미타주 박물관이라고 한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피터대제의 딸이자 피터대제의 다음으로 황제 자리에 올랐던 엘리자베타가 오늘날의 겨울 궁전으로 완성 했던 곳이다. 박물관으로서의 역할은 또다른 러시아 제국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예카테리나 여제가 그동안 수집한 예술품을 위한 갤러리로 만들면서부터 였다.
대영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 3 대 박물관으로 치는 사람도 있다.현재 3백여만 점의 컬렉션을 자랑하고 있으며 년간 25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관람하고 있다고 한다.
혹시 했는데 뜻밖에 놀라운 그림을 만날 수 있었다.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 이다.
헨리 나우웬이 종일 그림을 보며 묵상해 한권의 책으로 썼던 바로 그 그림이다. 나도 설교 때 인용한 적이 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큰 그림이었다. 그 그림 앞에서만 1시간 정도 머물며 잘 감상했다.
헨리 나우웬이 종일 그림을 보며 묵상해 한권의 책으로 썼던 바로 그 그림이다. 나도 설교 때 인용한 적이 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큰 그림이었다. 그 그림 앞에서만 1시간 정도 머물며 잘 감상했다.
감사하다. 또 감사하다.
저녁에 유스호스텔로 돌아왔다. 들어오는 입구는 형편없이 추했는데 정작 안은 아주 깨끗하게 꾸며 놓았다. 모처럼 근처 마켓에서 컵라면과 음식을 사가져 와서 아이들과 맛있게 즐겁게 잘 먹었다. 모두가 행복한 것 같다. 저녁 9시 30분에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리며 렘브란트의 그림을 설명해 주며,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크고 놀라우신 사랑을 함께 나누었다.
다시한번 교회와 성도님들께 감사드린다.
위성교 목사와 선교팀 드림
======================================
(제5신, 2013년 8월 9일)
모스크바를 향하여
인도 선교 후에 키르키즈스탄의 수도인 비쉬켁에서 하루를 쉰 후에 모스크바를 향해 비행장으로 향했다. 그동안 정들었던 장 선교사님의 "God's Love" 교회가 마련한 저녁 만찬을 마지막으로 우리들은 선교를 마치고 러시아 비젼 트립이 시작된 것이다.
해마다 선교보다 오히려 비젼 트립이 더 힘들었던 경험이 생생하다, 올해는 다를까?
모스코바 공항에 도착하니 아이들의 어깨에 자신감이 넘쳐 흐른다. 조금도 두려움없이 Passport Control 앞에 서서 혼자서 수속을 마친다. 처음 출발할 때 미국 공항에서 어리벙벙하던 모습들은 간 곳이 없다. 이미 Global Citizen 모습을 지닌 것일까? 이 아이들을 향한 꿈이 생기며 간절한 기도를 전능하신 아버지께 드린다. 아버지의 마음에 합한 영향력있는 사람들이 되어 주의 영광을 들어내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모스크바의 숙소인 카톨릭 센터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에 내일 새벽 기차를 타고 샌 피터스버그 (Saint Petersburg) 로 출발한다. 침대칸에 예약을 해 놓았다. 오늘은 늦은 아침을 하고 아침 예배를 야외에서 드렸다. 사도행전 24장의 말씀 나누었다. 아이들이 돌아가며 자신이 은혜받은 말씀을 나누는데 두려움이 없이 차분하게 잘 나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느껴졌다.
오후에는 붉은 광장(Red Square)과 크레믈린 주위를 관광했다. 건물의 아름다움과 장중함이 어울려 아름다운 모습이다. 과거 공산주의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관광객이 대부분인지 자유로움과 세속의 물결이 여기저기에 흘려 넘친다. 이곳에도 더 능력있게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면서 걷는다.
끝나는 날까지 안전과 보호를 위해 우리 주님께 기도하며 우리 뉴라이프 성도님들께기도를 부탁드린다.
선교팀 드림
===================================================
(델리에서 머무는 숙소 근방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아 소식을 이제야 보냅니다. 자녀를 보낸 부모님들은 물론 성도님들도 궁금해 하시고 다소 염려하셨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희는 우리 주님의 보호와 특별한 은총으로 모두 건강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계속 기도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4신, 2013년 8월 6일)
'선교는 사서 고생이다'
사서 고생이다는 말이 실감난다
선교는 사서 고생이다
인디아 델리의 밤 끈적끈적한 더위에 잠 못 이룬다
다리에 난 땀띠가 가려워 자다 일어나
기도하며 계속 귺는다
예수님의 피
땅밟기 기도 노방 전도하고 들어오면
온 몸에 땀이 흐른다 땀으로 목욕을 한다
우리 아이들 여린 다리마다 여기저기
모기 물린 자국으로 울긋불긋하다
예수님의 피
별로 입에 맞지 않는 현지 음식
그래도 감사히 먹는다
땟국물 자국 반들반들하게 배어있는
택시 버스 좌석에 꺼리낌없이 앉는다
예수님의 피
그래도 감사히 먹는다
땟국물 자국 반들반들하게 배어있는
택시 버스 좌석에 꺼리낌없이 앉는다
예수님의 피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생기 발랄하다
불평이 없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다
피곤해도 아침 일찍 일어난다
성경을 읽는다
기도한다
예수님의 피
예수님이 흘리신 십자가 보혈도
사서 고생하신 증거 아닌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온 인류를 사단의 권세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사서 고생하시지 않았는가
사서 고생하신 증거 아닌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온 인류를 사단의 권세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사서 고생하시지 않았는가
선교가 사서 고생해도 기쁘고
많은 비용 들여도 아깝지 않고
먼길 다녀도 힘들지 않고
조금 힘들어도 짜증나지 않고
오히려 모두가 한결같이 환하게 웃는 이유이다
인디아 제5일(8월 6일 화요일)
오늘은 남자 어른들에게 중요한 임무가 주어졌다. 컴퓨터 모니터를 찾는 일이다.
우리 교회가 작년 겨울에 키르키즈스탄 장 선교사님에게 보낸 모니터 40개가 다른 컨테이너에 실려 이 곳 인디아로 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장 선교사님이 이곳 저곳 수소문해서 델리에서 사역하시는 최 선교사님이 보관하고 있음을 안 것이다. 찾아 가져 올 길이 막막했던 참 이었는데 우리 단기팀이 델리에 오게되다니! 우연한 일은 분명히 아니다. 장 선교사님이 애타하며 드린 기도를 우리 주님이 들으신 것이다.
한 시간 정도 택시를 타고 가 최 선교사님을 만났다. 연세는 78세, LA에 있는 교회에서 파송되어 다른 지역에서 오랫동안 선교에 헌신하다가, 인도에서 3년 째 학교 사역을 하고 계시는 분이다. 도둑맞을새라 자신의 아파트에 잘 보관해 두고 계셨다. 나이드신 분이 운반하시느라 얼마나 수고하셨을까 생각하며 깊이 감사드렸다. 선교 현장에 와 보면 뜻하지 않게 이런 귀한 분들을 만나게 된다. 선교사님의 사역과 건강, 가족을 위해 기도해 드렸다.
최 선교사님이 모니터 6개가 필요하다고 해서 우리 주님의 뜻인줄 알고 감사한 마음으로 드렸다. 나머지 34개를 잘 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팩킹에 필요한 바이닐, 테이프들을 샀다. 정기영 안수집사님 부부, 김성균 집사님 부부가 땀흘리며 수고하여 하나 하나 다치지 않게 잘 싸서 팩킹했다. 장 선교사님과 스태프들이 얼마나 기뻐할까!
집사람이 이기석 선교사님 이야기를 했다. 이스라엘로 파송되기 전에 캄보디아 등 여러 선교지를 갈 때 마다 현지에서 필요하다는 물품들(앰프, 스피커, 툴들)을 미국에서 구입하여 큰 가방 보따리에 넣어 부치고 찾고 하면서 수고한 것이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선교 현장은 이런 수고들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어른 남자들이 모니터를 찾아오는 동안 다른 팀원들은 계속 땅밟기 기도와 성경 배포 사역을 하였다.
내일은 키르키즈스탄으로 돌아간다. 아침 일찍 델리 공항으로 택시에 나눠 모니터를 싣고 가기로 했다.
모든 일이 순적하기를 기도한다.
이곳 델리에서 우리를 안내하며 수고한 Siby 선교사에게 감사하다. High Class 대학생에 포커스를 맞추고 성경배포와 제자훈련 사역을 하는 그가 귀하다. 1000불을 선교헌금으로 드렸다. 우리 교회가 선교 음악회를 통해 모금한 것이다.
우리 뉴라이프 성도님들에게 감사드린다. 이렇게 선교 현장에서 건강하게 안전하게 의미있게 사역할 수 있음은 우리 뉴라이프 공동체 가족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머리되시는 우리 주님은 이렇게 교회를 통해 이 지구 상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시는 것이다.
우리 성도님들의 후원과 선교위원회, 성도님들의 기도에 다시한번 감사드린다.
위성교 목사와 선교팀 드림
=========================================
(제3신, 2013년 8월 5일)
인디아 뉴델리 제1일(8월 2일 금요일)
전날 저녁 비쉬켁 공항을 출발하여 40 분 만에 카자흐스탄 알마티 공항에 밤 9시에 도착했다. 다음날 아침 7시 뉴델리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 내에서 10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다들 공항 내 대기석 의자에 몸을 눕히고 잠을 청했다.
비쉬켁이 너무 더웠기 때문에 다들 옷을 얇게 입었는데 알마티 공항 대기실은 에어컨때문에 추웠다. 비쉬켁 공항은 못사는 나라여서 공항에 에어컨이 있다는 사실도 모를 정도로 약했는데 역시 카자흐스탄은 잘사는 나라여서 그런지 에어컨 바람이 만만치 않았다. 팀원들이 감기걸리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모두 건강했다. 확실히 선교 현장에는 특별한 우리 주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이 있다. 감사드린다.
4시간 비행 끝에 뉴델리에 도착했다. 뉴델리 공항은 현대식 공항으로 인천공항 다음 세컨 베스트 공항으로 뽑힐 정도의 시설을 자랑한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현지 YWAM 선교사 Mr. Siby가 마중 나와 있었다.
공항 밖으로 나가 숙소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5대 택시에 나누어 탔는데, 택시는 한국 70년대 시발 택시가 연상되었다. 더러운 시트와 에어컨 없이 창문을 열고 계속 경적을 울리며 이리저리 차선을 넘나들면서 곡예를 하듯 달렸다. 수없이 많은 차량과 오토바이, 삼륜차, 자전거, 사람들이 혼합되어 거리가 혼잡할 대로 혼잡했다.
델리에 2000만 명이 밀집해 살고 있다. 인도 인구는 12억이다. 중국 다음으로 많은 사람이살고 있다. 수많은 다민족들이 혼합되어 살고 있다. 1시간을 달려 숙소인 돈보스코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우여곡절 끝에 모두 함께 만나 숙소에 짐을 풀었다. 우리 하나님의 선하신 손의 도움에 감사드린다.
인디아 제2일(8월 3일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예배를 드렸다.
오늘은 인디아가 자랑하는 타지 마할 관광으로 일정이 잡혀져있었다.
이곳 델리에서 타지마할까지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서민들이 함께 타는 관광 버스를 탔다. 역시 60년대 한국에서 운행되던 완행 버스 정도의 수준이었다. 에어컨 없이 창문을 열어놓고 달리니 자연산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 좋았다. 좌석 위 선반에 올려두었던 정기영 안수집사님의 백팩을 그곳에 서식하던 생쥐가 갉아먹었다. 아이들이 기겁을 했다.
길거리에 간혹 울긋 불긋 상여 같은 것을 메고 가는 행렬이 있다. 이들은 힌두교 성지 순례 행렬이라한다. 10일 정도 150여 km 를 걸어서 갠지즈강에 이르러 몸을 씻는다 한다. 그들을 알기 위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찾아 보아야겠다.
버스가 달리는 동안 아무런 주저함없이 대로에서 실례를 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해 밀려오는 심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쓰레기가 곳곳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타지 마할 관광을 마치고 오후 6시에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밤 10시 쯤 도착할 것으로 생각했다. 버스가 한곳에 이르러 쉬었다. 저녁식사 시간이다. 우리 팀들은 10시쯤 도착하여 숙소에 마련된 식사를 할 생각으로 차 안에 남기로 했다. 가는 길에 점심 시간을 30분 주길래 30분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1 시간여 기다렸다. 차는 다시 출발했고 우리는 약 1시간 30분 후에 숙소에 도착하려니 하고 다들 잠이 들었다.
차가 다시 멈췄다. 이번에는 이마에 빨간 칠을 한 사람이 올라와서 한참 이야기를 하더니 모든 현지인들이 말없이 조용히 일어나 이 사람을 따라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유명한 힌두교 사원에 간 것이었다. 버스는 우리의 도착지를 향해 가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사원을 향해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버스에서 나와보니 정 집사님께서 어떤 분과 이야기를 하고 계셨는데 한국 사람이었다. 어학 연수차 인도에 왔다가 귀국 전에 유명한 타지마할을 보고 갈려고 현지인과 함께 버스를 탔다가 우리와 똑같은 처지가 된 것이다. 모든 관광버스 스케쥴에 그것이 포함되어 있는듯 싶었다. 그러니 영문도 모르는 우리를 포함한 외국인 관광객들만 멍한 표정이다.
잠시 후에 버스가 다시 섰는데 기사분께서 식사를 하시는 식당이었다. 우리는 다시 30여분을 기다렸다. 참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었지만 우리는 선교팀의 모습으로 참고 기도하고 찬송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돌아오니 새벽 2시가 되었다. Mr. Siby 우리가 걱정이 되어 자정쯤에 경찰에 신고를 하고 우리를 수소문했다고 한다. 인디아에 대해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운 하루였고 초창기 선교사님들의 고충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인디아 제3일(8월 4일 주일)
아침에 팀끼리 먼저 예배를 드렸다.
오후에 인도인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며 준비해온 스킷을 하기로 했다. 걷고, 버스 타고, 메트로 전철을 두번 갈아 타고 2시간 쯤 갔다. 주로 젊은이들로 구성된 역동적인 교회였다. 뜨겁게 함께 찬양 드렸다. 힌두교와 혼합 종교 일색인 인도에서 모처럼 크리스천 형제애가 느껴졌다.
스킷을 공연했다. 우리 주님께 영광 돌리며, 인도 교회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또 2시간 걸려 숙소에 무사히 잘 돌아왔다. 우리 주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린 하루였다.
또 2시간 걸려 숙소에 무사히 잘 돌아왔다. 우리 주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린 하루였다.
인디아 제4일(8월 5일 월요일)
아침 6시에 일어 났다.
식당으로 내려가 사도행전 21장 부터 24장 까지 읽으며 묵상 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했다.
8시에 팀원들이 내려와 아침 식사를 했다. 차오면, 식빵과 잼, 밀크, 바나나, 커피로 매우 단촐한 매뉴이다. 매일 아침 메뉴는 거의 비슷하다. 아이들은 별로 입 맛이 없는 것 같다. 9시에 함께 모여 QT를 하며 예배를 드렸다.
바울이 가랴사랴 감옥에 2년 갇혀 있었다. 그는 소아시아와 유럽 여러 지역을 다니며 쉼없이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며 움직였다. 그런데 아무 일도 못한채 2년을 갇혀 있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온통 힌두교, 이슬람으로 뒤덮여 있는 델리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열매가 보이지 않아 얼마나 지치고 힘들어 할까? 성령님께서 특별히 이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인도하셨다.
온통 힌두교, 이슬람으로 뒤덮여 있는 델리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열매가 보이지 않아 얼마나 지치고 힘들어 할까? 성령님께서 특별히 이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인도하셨다.
오전은 prayer walk을 하기로 했다. 10시 반에 출발했다. 이슬람 대학과 모슬렘 거주 지역을 걸으며 하나님을 찬양해 드렸다. 이슬람 대학은 3 만명의 학생들이 다니는 종합대학이다.
바깥 온도는 항상 섭씨 35도 정도, 습도가 높아 조금만 걸어도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1시간 동안 아이들이 아무 불평없이 걷고 또 걸었다. 마치 여리고 성을 돌고 또 돌았던 이스라엘 군대처럼 아무 말없이 오직 하나님을 찬양해 드렸다.
모슬렘 지역은 슬럼화(도시 빈곤지역)되어 있고 영적 어두움이 짙게 내려져 있었다. 밀집되어 혼잡한 가난한 상가 지역과 곳곳에 쓰레기로 덮힌 주거지역을 걸으며 그들을 주님께 올려드렸다. 숙소로 돌아오니 온 몸이 땀으로 목욕한듯 젖어있었다.
점심은 이곳 델리에서 우리를 안내해 주는 YWAM 선교사 Mr. Siby가 집으로 초대해 주어 먹었다. 아내와 8살 짜리 딸과 함께 서민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파트 렌트 약 400불을 포함해 한달 생활비가 1000불정도 드는데 현재 정기적으로 선교비로 받는 것은 약 350불이라고 한다.
Mrs. Siby는 수공예 제품을 집에서 팔고 있다. 이 수공예품은 인도 북부 여러 미전도 종족들이 만든 것이다. 이 부족과의 연결점을 찾기 위해 그들로 하여금 물건을 만들게 하고 약간의 이익을 붙여 크리스천들에게 파는 것이다. 물건은 스카프, 목걸이, 이어링, 저널 노트 등이다. 스카프나 이어링을 착용할 때 그 30초 정도 시간에 이 종족이 구원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기억하고 기도하라는 의미이다. Business as Mission의 모델이다. 어른들은 자녀들에게, 아이들은 부모님께 줄 선물로 싼 값에 즐겁게 쇼핑했다.
오후 4시 30분에 이슬람 대학생들에게 성경 배포하는 사역에 나갔다.
이들은 매우 열려져 있었다. 미국에서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영어로 말을 나누고 성경을 전해 주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고 거부하는 사람도 없었다. 단지 주위에 대학 경비원들과 경찰이 보여 조심해야했다. Mr. Siby의 사역이 공개될 수 없기 때문이다. 팀원은 둘 셋씩 조를 만들어 간격을 두고 나갔고 만나도 서로 모르는 체 했다. 모두가 땀 흘리며 애쓰고 기쁨으로 사역에 임했다. 아이들도 성령님의 도움으로 축복된 경험을 나누었다. 우리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
내일도 오전에 모슬렘 대학 앞에서 성경 배포 사역을 하고 오후에는 일반 대학에서 공연하면서 성경 배포를 할 예정이다.
우리 뉴라이프 가족들의 기도로 모든 사역에 주님의 강한 임재를 느낀다.
감사드린다.
위성교 목사와 선교팀 드림
=======================================
(제2신, 2013년 8월 2일)
Tokmok에서
비쉬켁의 사역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약 60km를 이동하여 Tokmok으로 갔다. 그곳은 정부가 운영하는 장애우 시설로 약 200명의 환자가 있었다. 약 40명 정도는 전혀 거동을 할 수 없는 중환자였다. 우리는 거동이 가능한 환자들을 위해 공연을 했다. 햇볕이 살갗을 파고드는 더운 날씨였지만 팀원들은 개의치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해 온 무언극을 했다.
참으로 성령님의 강한 임재가 있는 공연이었다. 모슬렘 장애우 시설임에고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의 멧세지를 강력하게 증거하였고 많은 장애우들, 직원들, 함께 동행한 “God’s Love” 교우들의 마음에 분명한 확신이 주어진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공연 후 간단한 점심을 먹고 장애우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이들을 대하는 우리 팀원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못해 숭고하기까지 했다.
그즐끼야로 향하여
계획했던 비행기가 취소됨으로 우리는 할 수 없이 미니밴 3대를 빌려 12시간이 걸리는 여정으로 돌입했다. 만년설이 있는 텐산을 넘어간다는 호기심(?)과 함께 안전및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계획은 오후 2시에 출발하여 다음날 새벽 3시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이 곳에 있는 차들은 대부분이 에어컨디션이 없다. 우리가 빌린 미니밴도 1대만이 에어컨디션 시설이 되어있었고 2대는 없었다. 날씨는 섭씨 40도를 웃돌고 있는데…. 창문도 앞에만 있다. 그렇지만 아무도 불평하지않고 여정은 시작되었다.
텐산은 자신만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뽐냈다. 차로 이동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들을 했고 아이들도 즐거운 모습이었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자연을 보는 것은 너무 좋았는데 화장실의 방문은 우리를 기절시킬 지경이었다. 라마단 덕분에 자정에 식당에 들려 식사를 하고 예정대로 새벽 3시에 도착해서 숙소에 도착했다. 오전 11시까지 잠을 자고 점심후 사역의 현장으로 갔다.
그질끼야에서의 사역
국가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으로 갔다. 가기전에 몇가지 주의 사항을 알려주었다. 먼저는 그곳에서 기도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 아이들과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차에서 기도하고 고아원으로 들어갔다. 준비한대로 열심히 페인트를 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놀이기구와 층계, 그리고 레일들을 칠하는 것이었다. 모슬렘지역 그즐기야에서 교회가 존립하기 위해서 교회의 필요성을 알리는 지역 봉사였다.
둘째날 고아원으로 가기전에 전화가 왔다. 우리 자녀들이 입고 있었던 티셔츠에 대한 이야기였다. “Only One Way, Jesus!”라는 문구가 새겨진 셔츠를 입을 수 없다는 경고였다. 잠시 화가 났다. 자기들이 원하는 것은 다 갖기 원하면서…. 라는 불평스런 마음이 들었다. 그것도 잠깐 다시 주님의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우리가 그곳에서 우리 마음대로 한 것은 눈뜨고 기도한 것과 영어 찬양노래를 틀고 일한 것이었다. 다행히 언어의 소통의 어려움으로 별다른 방해없이 모든 사역을 잘 마칠 수가 있었다. 아쉬운 것은 아이들과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질끼야의 사역을 마치고
날마다 사우나를 하게 한 지독히도 더운 날씨를 뒤로하고 비쉬켁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17인승 버스에 몸을 실었다. 놀랄필요도 없이 에어컨을 없었고 창문은 앞좌석에만 두개 있었다. 포장도로를 달릴 때는 그나마 두 창문이나마 열고 다녔지만 비포장도로를 다닐 때에는 창문까지 닫아야 했다. 먼지가 일어나는데 마치 안개를 뚫고 달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는 약 반반 정도였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런 강행군에도 아이들은 불평하지않고 그 가운데서도 웃음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하나님의 귀한 동역자들이다. 두분 남자 집사님들의 즐거운 설겆이 소리도 우리들을 기쁘게 했다. 뉴라이프 가족들의 기도의 소리에 오늘도 힘을 입고 사역에 임한다.
===========================================
(2013 여름 단기선교 여정, 2013년 7월 31일)
어제(수요일) 오후 3시 키르키즈 비쉬켁 공항에 잘 도착했다.
장 선교사 부부가 마중나와 반갑게 재회했다.
월요일 밤 9시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출발했다. 화요일 새벽 5 시30 분 뉴욕 JFK 공항에 도착했다. 모스크바 연결 편을 타기 위해 8 시간 공항에 머물면서 책을 읽고 김치콩나물국밥을 먹었다. 오후 2시 20분 에어로플로트 러시아 항공편으로 드디어 출발했다. 9시간 비행 끝에 수요일 아침 7시 50분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9시 10 분 비쉬켁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빠른 속도로 움직여 security check 을 마치고 게이트에 8시 15분에 도착하니 아직 여유가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비쉬켁까지 4시간 비행이었다. 출발에서 도착까지 총 19시간 비행, 30시간 정도 소요된 긴 여정이었다.
그즐끼야로 사역 간 우리 선교팀이 7시쯤 도착한다고 해서 공항 라운지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두 시간여 공항에서 잠깐 누워 눈도 붙이고 하고 있는데 비행기가 연착되었다고 한다. 더 기다리지 말고 일단 장 선교사 집으로 가자고 해서 40 분 정도 차 타고 장선교사 집으로 갔다. 샤워를 하니 기분이 상쾌 했다. 장 선교사 사모는 건강이 많이 좋아져서 밝은 얼굴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산 여행용 콤팩트팩을 회복 선물로 주니 기쁜 표정이었다. 딸 주희 세희에게도 용돈을 주었다. 선교사 자녀들은 참 귀한 자녀들이다. 우리 주님이 저들의 장래를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우리 선교팀이 잘 도착했다는 소식이 와서 시내 경복궁이란 한식집에서 만나 저녁을 먹기로 했다. 9시 20분 반갑게 잘 만났다. 모두 건강했지만, 섭씨 40 도가 넘는 곳에서 열심히 사역하고 와서 약간은 지친 표정이었다. 한식집에서 각자 취향대로 음식을 시켜 먹었다. 집사람은 돌솥 비빔밥, 나는 된장찌개를 시켜 함께 먹었는데 아주 맛이 좋았다. YWAM 아웃리치 팀으로 오신 조남호 목사님 내외분과 YM 리더 고 선교사님 부부를 만났다. 식사비는 정기영 안수 집사님이 용의주도하게 먼저 계산하셨다.
밤 10시 30분, 선교센터로 돌아왔다. 팀들은 세탁하려고 옷을 내놓고 샤워를 시작했다.
나는 11시 30분 쯤 선교센터 내 선교사님 오피스 쇼파에 피곤한 몸을 눕혔다.
모든 일정을 순적하게 해주신 우리 주님께 참으로 감사드린다.
위성교 목사
====================================
(제1신, 2013년 7월 27일)
7월 22일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떠나는 모든 팀원들의 모습은 행복해보였다. 24일간의 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샌프란 시스코 - 뉴욕 - 모스코바 - 키르키즈스탄으로 연결되는 항공편을 이용했다.
뉴욕에서 약 6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뉴욕의 유명한 거리인 타임 스퀘어를 보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한 어른들의 배려로 가능한 일이었다. 김성균집사님 부부가 우리의 모든 짐을 지키시겠다고 자원하셨다. 타임 스퀘어에서 한국 식당에 들려 아침을 먹고 아이들은 약 20블락을 걸어 타임 스퀘어를 구경했다.
다시 공항으로 돌아온 우리는 모스코바행의 비행기가 연착됨을 알았다. 모스코바행 비행기의 연착으로 키르키즈스탄으로 가는 비행기를 승무원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 수 있었다.
키르키즈스탄에 도착한 우리들은 짐을 정리하고 저녁을 먹은 후 쉬고, 다음날 부터 유치원 교실의 페인트 칠을 했다. 키르키즈스탄에 있는 현지교회인 "God's Love" 에서 선교 컨퍼런스가 있어서 함께 참석해 예배로 드리고 공연할 기회를 갖었다. 공연과 페인트를 번갈아 가면서 했고 토요일(27일)에는 약 200명의 장애자들이 있는 시설로 가서 공연을 통해서 복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