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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일 (9월 22일 주일) 산토 도밍고 에서 벨로라도까지 약 2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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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뉴라이프교회 작성일13-09-22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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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굳게 닫힌 대성당 문 앞 벤치에서 아침 8시주일 예배를 드렸다. 이번 기회에 카톨릭 국가에서 주일 미사가 어떻게 드려지는지 8시 30분 미사에 참석해 보려고 계획했다.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가 시간 바뀐 것을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명목상 카톨릭으로 주일을 중요시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12시 경 조그마한 마을을 통과하면서 걸맞지 않게 크게 지어진 성당이 문을 열고 있어서 들어가 보았다. 초록색 예복을 입은 늙은 신부님께서 열댓분 정도 모인 앞에서 미사를 인도하고 있었다. 모든 중세 예배당에 그러하듯이 천정은 높았고 청동으로 주조된 부조들이 전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우리 주님은 어디 계신 것일까?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현대인들에게 어떤 분이실까? 종교 다원주의와 자기각성, 내면세계의 성찰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인들은, 심지어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조차 그리스도를 대체하고 내면의 영성을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 한다. 그리스도 없는 영성이 진짜 영성일까? 또 하나 자기 속임은 아닐까?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자신의 각성을 쓴 '순례자'를 쓴 유명한 작가 파울로 코넬료가 생각났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연금술사'도 산티아고 길에서 영감을 받아 쓴 것이라고 한다. 코엘뇨는 카톨릭 신자인데 자기 각성과 성찰이라는 그리스도 없는 다원주의에 가깝다. 코엘뇨의 영향 때문에 산티아고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본 코엘뇨와 순례자에 관한 내용이다
★파울로 코엘료:
1947년 브라질 출생, 브라질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브라질의 신비주의 작가이며, 극작가, 연극연출가, 저널리스트, 대중가요 작사가로도 활동하였다. 1986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에 감화되어 자신의 꿈인 작가로서의 첫작품 "순례자"를 1987년 발표하였다. 그 이듬해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려낸 "연금술사"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2009년에 "연금술사"로 기네스북에 한권의 책이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작가로 기록되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연금술사" 1988년, "피에트라 강가에 앉아 나는 울었노라" 1994년
★줄거리
이책은 파울로가 순례길을 걷게된 동기와 순례길을 걸으면서 영적체험을 통한 자신의 변화된 삶을 진솔하게 이야기 한 책이다. 파울로가 가입되어 있는 RAM(1492년 기독교 평신도회에서 창설한 단체)이라는 단체에서 람의 마스터라는 지위로 승격되는 서품식이 열리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당시 파울로는 세상에는 비밀스럽고 신비한 길들이 숨어있고 삶의 신비를 깨우쳐 주는 것은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만이 가능하고 이를 주관하는 능력을 가진 이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심취해 있었고 마스터가 되면 자신은 이제 마법사로서 특별한 능력을 펼칠수 있다는 오만에 가득차 있었다.
마스터가 되는 마지막 절차인 새검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자 그의 마스터는 파울로의 손을 발로 밟으며 이렇게 외친다. "자신을 속이는 그대의 손을 거두게! 성전의 길은 몇몇 선택된 자들의 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길이네! 그대가 지니고 있다고 믿는 힘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야. 다른 이들과 나눌수 없는 힘이기 때문이지. 그대는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서 검을 찿아야 하네. 산티아고 순례길에 숨겨놓은 검을 찿아야 하네." 마스터는 평범한 사람들의 길에서 파울로가 찿는 진리가 있다면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명한다. 파울로는 길을 인도해 줄 안내자 페트루스와 함께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페트루스로 부터 람의 의례에 관한 훈련을 배우고 행하면서 영적탐색을 계속한다. 끊임없이 질책당하고 갈등을 벌이면서 길위의 여정은 고통의 길이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로 믿고 세상의 진리를 발견하려는 파울로에게 페트루스는 끊임없이 말한다. 산티아고 길은 평범한 사람들의 길이고 세상에는 신비란 없다는 것, 감춰진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인 것은 알려지게 마련이라는 예수의 말로 일깨워준다. 그러나 파울로는 자신을 드러내 놓지 않는 신을 발견 하려 노력하고 적당한 시간에 기도하고, 낯선 길을 걸으며 훈련 받고 조리에 맞지 않는 지시를 받아 들이는 것 모두가 힘든 고통일 뿐이었다. 언제 산티아고에 도착하여 이 여정이 끝날지와 검을 손에 넣겠다는 일념만이 파울로가 생각하는 전부였다.
길고도 지루한 산티아고길을 걸어 마침내 새검을 찾고 종착지를 눈앞에 둔 파울로는 이렇게 말한다. "내검의 비밀은 인간이 살아 가면서 얻는 모든 성취의 비밀과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것이었다. 검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가 바로 그것 이었다." "비범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길위에 존재 한다는것. 그것은 모든 위험을 무릎쓰고 내가 믿는것의 종극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깨달음 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길을 계속 따라 걷기 위해 매일같이 치러내야 하는 나 자신의 선한 싸움에서 존엄과 끈기를 발견할 수 있도록 날 북돋아 주는 것도 역시 그것이었다."
★책속 밑줄
●지혜로 향하는 진정한 길은 세가지 요소를 포함해야 합니다.
첫째, 그길은 아가페를 포함해야 합니다.
둘째, 살아 가면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누구라도 갈수 있는 길이어야 합니다.
바로 우리가 걷고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말이죠.
●천사는 언제나 우리를 보호 해 주는 신의 선물이죠.
그는 굳이 불러 낼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 곁에 있는 천사의 모습은 어디서나 볼수 있으니까요. 너그러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 보기만 하면 시냇물에서도,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에게서도 그리고 파란 하늘에서도 천사를 볼 수 있습니다.
●싸움을 피해 도망 간다는 것은 최악의 사태인 것이죠.
싸움에 지는 것 보다 더 나쁜 겁니다. 패배를 통해서는 무엇이든 배울 수 있지만 도망 간다면 적의 승리를 선언하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얻을게 없으니까요.
●소리에는 모든 것이 씌어 있죠. 인간의 과거, 현재,미래가 귀기울여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삶이 우리에게 매 순간 아낌없이 주는 조언을 들을 수 없습니다.
현재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만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삶은 매순간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니까요. 따라서 비밀은 단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매일의 삶을 살아 가면서 우리도 솔로몬 왕처럼 지혜롭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강인해 질수 있다는 것을 받아 들이는 것 입니다.
●나는 세상의 신비를 발견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길은 세상에는 신비란 없다는 것.
"감춰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라는 예수의 말씀을 일깨워 주셨다.
●우리를 신께 한걸음 더 가까이 가 닿게 해주는 것은 열정이지, 수백 수천의 고전을 읽는 것이 아니라고 비밀 의식이나 심오한 교리를 따르는 입문식이 아닌, 삶이 기적임을 믿으려는 의지가 기적을 낳는 것이라고...
(이상 인터넷 검색 결과)
니고데모라는 지성인이며 산헤드린 의원이 밤 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다. 자기 각성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요한 복음 3장에 나와 있는 이야기이다.
"바리새파 사람 중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대인의 의회 의원이었다. 그가 어느 날 밤, 예수님께 와서 “선생님, 우리는 당신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선생님이 베푸시는 기적을 아무도 행할 수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내가 분명히 너에게 말하지만 누구든지 2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고 대답하셨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난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두지만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요한복음 3:5 KLB)
그리스도 없는 자기 각성과 영성은 아무리 지혜로워도 거짓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만물의 주인이시며, 만물이 존재하는 이유가 되시기에. 현대판 헬라주의 영성의 함정에서 벗어나라.
"유대인은 기적을 보기 원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이것이 유대인에게는 거치는 돌이며 이방인에게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2, 23 KL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