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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일 (10월 2일 수요일) 렐리에고스에서 레온까지 2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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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뉴라이프교회 작성일13-10-02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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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에 눈이 떠졌다. 조용히 도미터리를 빠져나와 다이닝룸으로 갔다.
오늘은 레온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상의 가장 크고 중요한 도시이다.
레온을 향하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부흥에 대한 갈망이 커지고 있다. 기도한다.
오늘은 레온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상의 가장 크고 중요한 도시이다.
레온을 향하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부흥에 대한 갈망이 커지고 있다. 기도한다.
부흥
오 하나님, 하늘을 가르고 오시옵소서
바람과 구름과 불꽃으로오시옵소서
산을 진동시키시고 광야에 폭우를 내리시고
산림을 화염으로 태우소서
화려한 붉은 옷을 입고 위풍당당하게 오시는 분
원수를 포도즙틀 밟듯이 짓이기시는 분
원수에게 보이시고 행하셨던 위엄과 권능
당신의 백성을 향한 관심과 사랑은 어디있나이까
오 하나님, 주님은 우리 아버지시요
우리는 힘없는 진흙 주님은 토기장이이시니
주님 손으로 우리를 만드셨읍니다
우리를 굽어 살피시고 불쌍히 여기소서
무서운 심판 날 영광스런 주님의 날 오기 전
마지막 한번 구원의 날 은혜의 때를 주시옵소서
섬들이 주님을 찬양하고 열방이 기뻐 춤추며
세상 사람들이 무리가 되어 주님을 경배하게하소서
새벽 5시 45분 신선한 기분으로 출발했다. 날은 흐리지만 비는 멈추었다.
"약 10여 Km 걸은 후에 작은 마을에 있는 카페에 도착하니 몇몇 아는 얼굴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있었다. 어제 종일 비를 맞고 걸어서 아침에 나오면서 오늘은 별을 보고 싶다고 기도하는 소망을 마음에 두었다가 금방 취소했다. 어떤 날씨이든지 그냥 감사로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다. 더 내리면 판초를 써야지 했다. 계속 걷고 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빗방울은 벌써 멈춰있었다. 갑자기 남편이 '와~별 좀 봐라' 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운 별잔치가 열려있었다. 참 감사했다. 하나님의 돌보심에----
주 도로를 따라 옆으로 걷는 지루한 길을 약 14km 정도 걸어야 레온에 도착한다. 이런 길을 걸을 때는 참 힘들다. 차들이 쌩쌩 우리 옆을 지난다. 힘듬을 아는 남편이 다시 역사 이야기를 시작한다. 줄리어스 시이저 이야기, 나폴레옹 이야기, 로마의 삼두정치 이야기, 나폴레옹이 러시아 정벌에서 실패한 이야기, 어느 작가 이야기등을 자세히 재미있게 이야기 해주었다. 걷는 길이 훨씬 쉬웠다.
후각이 많이 발달했나보다. 레온 시내 가까이오니 매연 냄새가 역겨웠다. 속히 걸어서 피하고 싶었다. 도시에 들어올 때마다 힘듬을 느끼는데 오늘은 그래도 조금은 나은 것 같다. 순례자들이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나름대로의 배려가 있는 것 같다. 마켓에 들릴 일이 있어 들어갔다 나오니 순례자들이 판초를 쓰고 걷고 있었다. 한차례 소나기가 있었나보다. 레온은 참 아름다운 도시이다. 구석 구석이 매력적이다. 내일은 일찍 떠나지 않고 레온 성당의 내부를 본 다음에 한 11경에 레온을 떠날 예정이다. 지금까지 열심히 걸어온 덕분에 시간의 여유가 있다. 남편은 벌써 사역의 생각으로 들어간 것 같다. 주님 주의 종을 도우소서! "
오후 1시 레온 시 중심부에 있는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벌써 많은 순례자들이 도착하기 시작하고 있다.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이틀 전 카리온에서 아킬레스건 감염으로 출발하지 못했던 양재오 형제이다. 어느정도 나아져서 버스를 타고 왔다고 한다. 앞으로 탈 없이 잘 걷기를 소원한다.
레온은 까스띠아 이 레온 주의 주도로 인구 30만 명 정도, 스페인 북부에서 가장 크고 활기찬 도시이다. BC1세기 로마군 주둔지에서부터 발전하였고 레온 왕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Leon 지명도 군단(Legion)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로마, 서고트, 무어, 기독교 등 점령기를 거치면서 각 시대의 다양한 건축양식이 남겨졌다. 건축적 역사적 유산들이 많다. 914년 에스파냐(스페인) 기독교의 수도로 명명되기도 했다.
레온의 건축물 가운데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스페인이 낳은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지은 '카사 데 보티네스'(Botines House) 이다. 현재는 Caja Espana이라는 사인을 달고 은행건물로 쓰이고 있다.
건물 앞 벤치에 앉아서 작품을 구상하고 있는 가우디의 동상이 있다. 집사람 장난기가 발동한 사진을 한장 찍었다. 모두가 다 천재일 수도 없고, 천재일 필요도 없겠지만 그들의 작품은 상상력과 끈질긴 집중력의 산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 가우디
자유분방한 형태, 풍부한 색채와 질감, 유기적 통일성이 특징인 독특한 양식을 만들어냈다. 가우디는 거의 평생을 바르셀로나와 그 근처에서 일했으며 '성가족(聖家族) 교회'(Sagrada Familia)를 짓는 데 일생을 바쳤으나 이를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다.
가우디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카탈루냐 지방에서 비천한 집안의 구리세공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연로한 아버지와 조카딸과 함께 살았다.
괴짜였지만 훌륭한 건축가였던 가우디는 카탈루냐 문예부흥에 크게 공헌했다. 미술과 공예 부흥운동인 카탈루냐 문예부흥은 열렬한 반(反)카스티야주의인 '카탈루냐주의'로 일어난 정치부흥운동과 결합되었다. 이 두 운동의 목적은 카스티야 사람들이 지배층이 되고 마드리드가 중심이 된 스페인 정부 밑에서 오랫동안 압박받던 카탈루냐의 생활방식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었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성가족교회는 카탈루냐 르네상스를 종교적으로 상징한다. 이것은 가우디가 전 생애를 바친 계획으로 1883년에 이 교회 건설을 위탁받았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다. 이 일을 하면서 그는 신앙이 깊어졌으며 1910년 뒤에는 실제로 다른 모든 일을 포기하고 그곳에 은둔하며 일에만 매달렸다. 75세 때 그는 저녁기도를 하러 가다가 전차에 치어 죽었다.
그는 국제주의 양식이 성행하던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인정받지 못했으나 1960년대에 이르러 거의 모든 전문가와 비전문가들에게 존경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에 그에게 다가온 디자인의 난관들을 헤쳐나갔던 무한하고 끈질긴 상상력 때문이었다. 자신을 송두리째 건축에 바쳤으며 그에게 건축은 모든 예술의 총체였다.(인터넷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