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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일 (10월 1일 화요일) 베르시아노스에서 렐리에고스까지 2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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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뉴라이프교회 작성일7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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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비가 오고 바람부는 길을 걸었다. 아침 여섯시 반에 판초를 뒤집어 쓰고 출발했다. 어두운 길이다. 아내 아이폰으로 다운로드 해 온 후랫쉬로 앞을 비추었다. 앞을 분간 할 수 없는 길에 불빛이 고마웠다. 혹시 아이폰에 물이 스며들까 염려되어 판초로 감싸고 걸었다. 아이패드도 판초 안 앞 자켓 안에 넣고 찬양을 계속 들었다. 말씀은 예레미야 33장까지 들었다.



여덟시 반쯤 되니 앞길이 분간이 된다. 비바람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나나 집사람이나 평생 빗속을 가장 많이 걸은 며칠이다. 지난 토요일 부터 내린 비가 간간이 그치고 햇빛이 나기도 했지만 오늘까지 나흘간 계속되고 있다. 오늘은 제법 센 비바람이 그치지 않고 걷는동안 내내 계속되었다.


 


도시에 살고 있으면 사서 이런 고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장을 떠나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도시에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도 고맙고, 여기 길을 걷고 있는 우리도 감사하다. 모두에게 각자 맡겨진 하루 하루를 끊임없이 성실하게 살아간다는 것만큼 소중한 일이 어디있겠는가?



성공과 실패가 어느 기준으로 결정된다는 말인가? 도시의 성공과 실패는 생산성으로 결정된다. 여기 이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은 생산(product) 이 없는 것인가?  걷는 사람에게 꿈과 상상력은 무형의 특허 자산이다.


 


오랜 세월 동안 몇 분을 모시고 참고 견디면서 목회하고 있는 신실한 실력있는 동역자들을 생각해 본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위로 또는 동정은 교만이다. 우리는 서로 서로 인정하고 존경해야 한다.


 


이 넓은 하늘 아래 세상에서 성취란 무엇이냐? 각자 자기 길을 택하여 걸으며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혹시라도 '목회 성공 지상주의' 라는 단어는 입에 달지 말고 장사지내 버려라.


 


산티아고 길에 마을마다 우뚝 솟은 성당들이 있다. 들어 가 보면 감탄할 만한 중세기념물들이다. 부르고스 산타 마리아 성당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인걸(사람과 인물)은 간데 없다. 인물도 성취도 거의 기억되지 않는다. 역사가의 손에 알렉산더, 씨이저, 나폴레옹등 몇사람만 복원될 뿐이다. 하나님 나라는 전혀 다른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이니라"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메세타 거친 광야에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 역사 이야기 - 스페인 내전과 지식인의 정직성 또는 위선



1936년에서 1939년까지 3년에 걸쳐 벌어진 스페인 내전은 '프랜시스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국가주의자 군대가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선출된 공화주의자  정부를 무력으로 전복시키고 권력을 잡으려 하면서 일어난 전쟁이다.
 
전쟁 발발의 근본적 원인은 아무래도 왕정이 끝나고 처음 실시된 선거에서 공산, 사회주의자들이 주축이 된 공화주의파가 정권을 잡게됨에 따라 이에 불안을 느낀 중상류층 보수 기득권 세력이 "프랜시스 프랑코' 장군을 주축으로 하여 결집, 반발한  때문으로 보여지는데 공화파는 소련과  공산주의자,사회주의자,민주적 정부 신봉자들이 결집한 '국제여단'이라는 단체의 지원을 받았고 국가주의파는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즉 파시스트 국가의 지원을 받았다.


 


'국제여단'은  프랑코군에 대항하기 위해 프랑스 공산당 당수 '모리스 토레스'가 스탈린과 협의하여 공산당 국제지부인 '코민테른'의 이름으로 군대를 모집하면서 만들어진 군대인데 전쟁내내 5만9천여명이 참전을 했으며 구성원은 다국적,남녀 불문의 다양한 좌성향의 젊은 이상주의자들이어서 국가주의파인 프랑코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떨어졌다.
 
이 내전은  공산주의 신봉자들과  파시스트 집단간에 스페인 정권을 놓고 벌인 한판 싸움이었는데 최종적인 승리는 파시스트 국가인 독일,이탈리아가 지원한 프랑코 장군 휘하의 국가주의파들에게 돌아갔다.국가주의파들이 최종적인 승리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왕정 시대부터 안정적인 사회적 지위를 점하고 있던 중산층 이상의 민중들이 자신들의 자리 보존에 불안감을 느껴 결집을 해서 싸운 반면에 같은 좌익 성향이긴 하지만 공산,사회,온건 민주파등 다양한 색깔을 가진 자들의 결집체인 공화주의파들은 자체 내분을 일으켜 스스로 무너진 것도  한몫 했다고 하며 어느 편도 들수 없었던 영국,미국,프랑스같은 당시의 강대국들이 수수방관했던 것도 일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3년의 내전 기간동안 공화파 11만명, 국민파 9만명의 전사자를 냈고 전후 공화파 10~20만명이 승리한 국민파에 의해 처형된 것으로 알려진  이 내전이 다른 많은 내전에 비해 전쟁 기간이나 사상자수가 상대적으로 짧고 많지 않음에도 불고하고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세계 각국의 정치성향을 가진 많은 지식인들이 공화파를 지원하여 참전을 했고 그 경험을 글이나 기사로 남긴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대표적인 인물이 소설 '동물농장', '1984년'으로 유명한 조지 오웰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있거라'를 쓴 헤밍웨이인데, 조지 오웰의 경우 공화파로 참전하여 심각한 부상까지 당했으며, 같은 공화파인 공산당이 자신이 속한 사회당을 배척하는 바람에 처형까지 당할 뻔 했었다고 한다. 조지 오웰은 이 때의 경험을 살려 공산 독재를 비판하는 '동물농장'이란 동물을 의인화한 소설을 썼으며, 좌,우파의 횡포를 모두 비난하는 '카탈루냐 찬가'라는 글도 썼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종군기자로 참전했는데 위의 두 작품은 이때의 경험을 살려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0년에 그가 발표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읽어보면 헤밍웨이는 공화파의 문제점과 스페인 공산당의 행태를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헤밍웨이는 이런 사실에 침묵하고 있다. 2차 대전중의 상당 기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팔아 얻은 어마어마한 돈으로 쿠바의 하바나 근교에서 심해 낚시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또 스페인 출신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1937년 4월 26일 나치 독일 공군이 2차 대전을 위한 예행연습을 하듯 바스크족 마을인 게르니카를 무차별 폭격한 만행을 8m나 되는 초대형 그림 '게르니카'를 그려 그 참상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 내전에서 최종 승리한 프랑코 장군은 1975년말 사망할때 까지 무려 36년간을 독재정치를 하게 된다.


 


(인터넷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