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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일 (10월 16일 수요일) 산티아고에서 네그네이라까지 2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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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뉴라이프교회 작성일13-10-16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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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일간 하루도 쉬지 않고 830Km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원래 주일은 교회에서 스페인 분들과 예배드리고 쉬려고 계획했었다. 계획은 빗나갔다. 주일 날 함께 예배드리고 친교할 수 있는 교회를 찾을 수 없었다. 주일마다 집사람과 문을 열지 않은 성당 앞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또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큰 도시에서 하루를 쉬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분들이 많았다. 고되고 지쳤어도 굳이 쉬지 않은 이유는 이 길을 여행자가 아닌 순례자로 걷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하루 하루 빠짐없이 정직하게 걷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길이라 생각한 것이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날 종일 빗길을 걸었다. 분명한 은총의 메시지였다. 교회가 없기 때문에 산티아고 대성당에 들어가 우선 1시간 정도 조용히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빗길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걸어온 순례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같이 식사하며 서로 축하했다. 저녁 식사는 그 곳에서 다시 만난 김태겸 선생님이 사셔서 함께 먹었다. 빨리 걷던 분이 발바닥에 생긴 물집 때문에 늦어져 레온에서 다시 만난 인연이 있었다. 다음 알베르게에서 집사람이 스프와 야채, 쌀을 넣어 죽을 끓여 함께 저녁을 했었다. 그때 다시 만나면 꼭 저녁 식사를 사겠다고 하시더니 산티아고 도착해서 만난 것이다.
특별한 감회 가운데 성당 근처 펜션에서 하룻밤을 잘 잤다. 다음 날 아침 피니스테레를 향해 출발했다. 굵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주저함 없이 아내와 함께 판초를 뒤집어썼다. 양말 위에 비닐봉지를 덧신고 신발을 신었다. 신발에 물이 들어와 양말이 젖지 않도록.
피니스테레는 로마제국 당시 세상의 끝이라고 믿어졌던 곳이다. 스페인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하며 대서양과 맞닿은 곳이다. 우리 주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야고보 사도가 이곳까지 와서 전도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산티아고에서 89Km 서쪽이다.
산티아고 길을 끝낸 순례자들이 서로에게 물어본다면. 내일은 어디로 가느냐고. 산티아고에서 쉬겠다는 순례자들, 집으로 간다는 순례자들, 그러나 아무도 피니스테레로 걸어가겠다는 순례자는 만나지 못했다. 아마도 불규칙한 날씨 때문에 마음의 결정을 못한 것 같았다.
피니스테레까지의 4박 5일의 여정을 생각하고 우리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었다. 40일을 걸으며 기도해야겠다고도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길이 보일 거라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판초를 쓰고 피니스테라로 가는 길은 우리의 마음을 상쾌하게 했다. 잘 결정했구나 생각하며 둘이 손을 잡고 걸었다. 조금 가는데 감리교에서 오르간을 연주한다는 캘리포니아에서 오신 여성 순례자를 만났다. 17살 난 손자까지 있는 분이었다. 그분과 함께 아이패드에서 나오는 찬양을 함께 부르며 걸었다. 새크라멘토에서 약 2시간 반 떨어진 곳에서 사시는 분이었다.
그 분과 헤어져 한참을 걸어 어느 도시를 지나는데 길을 잃은 순례자 부부를 만났다. 노란 화살표 표시를 잘 보지 못하고 지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이셨다. 길을 가르쳐 드리고 다시 헤어졌는데 그 날 저녁 같은 알베르게에 묵었다. 우리 두 부부밖에는 다른 순례자들은 없었다.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에이레에서 오신 분들이었다.
오늘은 간간히 햇볕도 나와서 인사해주는 날이었다. 카페도 간간히 있어서 쉬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네그레이아에 도착했다. 떠나기를 잘했다는 생각과 적어도 39일은 걷겠구나 하는 마음에 하나님께 정말 감사하며 걸었다.
#야고보 사도
야고보와 요한은 형제로서 예수의 12사도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세베대의 아들이며 둘 다 어부였다가 베드로와 함께 예수의 '최측근'이 되었다. 예수는 그 형제를 '천둥의 아들'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이 예수 일행을 불친절하게 대한 마을 주민들을 예수에게 멸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누가복음 9:54~56). 야고보, 요한, 베드로는 예수의 거룩한 변형이 일어났을 때(마가복음 9), 그리고 예수가 겟세마네에서 체포될 때(마가복음 14:33~42) 그 현장에 있었다.
야고보는 사도들 중 최초로 신앙을 위해 순교한 사람이다. 헤롯 아그리파(아그립바) 1세의 치세에 그리스도교가 박해를 받을 때 야고보는 칼에 찔려 죽었다(사도행전 12:2). 헤롯 아그리파는 예수가 태어났을 때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모조리 학살하라고 명했던 헤롯의 손자이며, 세례자 요한을 처형한 헤롯 안디바의 조카였다.
중세에는 야고보의 유골이 예루살렘(그가 죽은 장소)에서 에스파냐 북서부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옮겨졌다는 전설이 퍼졌다. 그가 생전에 에스파냐에 복음을 전파했다는 설은 이미 있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813년에 에스파냐의 양치기들이 별의 인도를 받아 야고보의 유골이 있는 장소에 갔다고 한다. 어떻게 그곳에 유골이 있게 된 것일까? 여기에는 또 다른 전설이 있다. 예루살렘에서 죽은 뒤 야고보의 시신은 배에 실려 기적적으로 에스파냐 해안까지 떠내려갔다고 한다. (그보다 더 신빙성 있는 전설은 야고보의 추종자들이 그의 시신을 배에 싣고 에스파냐로 갔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산티아고(에스파냐어로 '성 야고보'라는 뜻)는 중세와 그 이후에 중요한 순례지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당시에는 아마 유럽 최고의 '관광 명소'였을 것이다. 유럽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야고보의 시신이 있다는 콤포스텔라 성당을 순례하고 싶어했다. 순례지 서열에서 산티아고는 예루살렘과 로마에 이어 3위였다. 콤포스텔라 성당을 방문한 사람들은 야고보의 상징인 조가비를 기념품으로 구입했다. 야고보는 현재 에스파냐의 수호성인이며, 가톨릭교회는 7월 25일을 그의 축일로 정했다. 전설에 따르면, 에스파냐가 무어인의 무슬림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애쓸 무렵 야고보가 백마를 타고 그리스도교 군대를 불러 모았다고 한다.
그래서 야고보는 마타모로스(Matamoros), 즉 '무어인의 살육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수백 년 동안 에스파냐 병사들은 "산티아고!"라는 함성을 내지르며 전장에 나갔다. 산티아고 부대가 별도로 창설되어 그 부대에 입대하는 병사는 큰 명예를 누렸다. 대원들은 아래쪽 끝부분이 뾰족한 칼처럼 장식된 붉은 십자가를 패용했다. 신대륙에 이주한 에스파냐인들은 야고보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몇 개 도시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가장 유명한 도시는 현재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이고, 그밖에 쿠바와 도미니카공화국에도 산티아고라는 도시가 있다.(출처『바이블 키워드』, J. 스티븐 랭 저 | 남경태 역, 2007.12.24, 들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