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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헝가리 집시 & 독일 난민선교 (7/1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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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뉴라이프교회 작성일17-07-19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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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캘리포니아에서 미쉬콜츠 선교센타로)
현재 부다페스트의 시각은 오후 2:07분. 1,2,3팀 (총 25명)이 잘 도착해서 공항 근처의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고있다. 멀미가 난다고 했던 아이들도 벌써 친구들과 함께있는 즐거움에 다 잊어버리고 신나게 웃으면서 잘 먹고있다. 45인승 버스에 잔뜩 실린 짐이 선교 첫날을 알린다. 4,5팀이 저녁 6:30에 도착 예정이다. 이미 도착한 팀은 약 4시간 동안 부다페스트 시내를 돌아볼 예정이다.
버스 안에서 박완주 선교사님이 알려주는 헝가리 역사를 들었다. 남한 정도의 사이즈에 인구는 약 1000먄명이 거주하고 있는 나라이다. 부다페스트를 가로 지르며 흐르는 다뉴브강은 북쪽 오스트리아에서 시작해서 남쪽으로 슬보베키아를 지나 흑해로 흘러들어간다고 한다. 다뉴브 강에 떠있는 많은 배들이 부다페스트를 찾아오는 관광객이 얼마나 많은지를 이야기해준다.
부다페스트 성으로 가는 길에 "부다시"와. "페스트"성을 연결하는 체인 브릿지를 지났다. 두 도시를 연결해서 새로운 이름의 도시 "부다페스트"가 생겼다고 해서 다리 이름이 "체인브릿지"다. 부다페스트 성에서 보니 도시의 아름다움이 한 눈에 들어온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성은 유럽풍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투어그룹으로 나누어서 구경을 가는 아이들의모습은 아름다움을 넘어 생명력을 느낀다.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올지 기대가 된다.
따가운 햇빛을 피해 그늘에 앉아있으니 시원하다. 많은 관광객의 목소리 속에서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왜일까? 내일부터 시작되는 사역의 부담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 순간에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나에게 주님의 나라의 희망을 보게 하기 때문일까? 처음 해외 선교를 데리고 나왔을 때 그들의 눈에서 보았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이제는 더이상 볼 수 없고 대신에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와 흥분을 본다. 우리 자녀들이 세계적 인물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런 자녀들을 우리가 너무지역적 인물을 키우는 쪽으로 교육의 방향을 설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고 반성을 해본다.
센타에 들어오니 벌써 저녁 10시가 되었다. 부지런히 짐을 정리하고 10:35분에 예배를 드렸다. 한시간 이상을 집중하여 예배를 드렸다. 선교지에서의 예배는 사역보다 중요하다. 예배를 통해 다음날의 사역의 성과는 결정이 된다. 예배 후에 QT리더들과 함께 모임을 가졌다. 내일 아침은 QT로 시작된다. 주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하며 오늘 잠을 청한다.
둘째날
어젯밤에 1시경에 취침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섯 시 쯤 되니 여자아이들이 벌써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침 식사 시간에 들으니 어른들은 4시부터 일어났다고 한다. 7:30분부터 소그룹으로 나누어서QT시간을 가졌다. 진지하게 말씀을 나누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하다. 어른들은 식사 준비를 위해 20분 일찍 QT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큐티를 하는 동안 어른들은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을 설거지와 청소를 담당 한다.
어른들의 부지런함으로 오늘 아침은 한국식과 미국식을 함께 맛볼 수 있었는데 아이들이 한국식을 더 선호하는 것을 보니 아마 이들도 피곤하거나 여행중일 때는 한국식이 댕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Lak 마을로 가는 길에 코스코와 홈디포를 합쳐 놓은 것같은 마켓에 들려 4일 동안 필요한 물품들을 샀다. 버스에 앉아서 기다리게 하는 것 보다는 마켓이라도 둘러보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선교사님의 말씀을 따라 아이들과 함께 마켓으로 들어갔다. 샤핑은 안된다는 말을 단단히 못박으면서….
버스를 타고 Lak마을에 도착하니 벌써 11시가 되었다. 오늘은 마을에서 현지 음식인 구라쉬를 먹었다. 헝가리 음식과 우리 음식이 비슷한 것이 많다고 하는데 구라쉬를 보니 닭도리탕과 맛이 비슷했다. Lak마을의 시장이 직접 요리를 하고 서브까지 했는데 그는 요리 경연대회에 나가서 2등을 한 솜씨라고 한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팀원들은 가가호호 방문을 시작했다.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익힌 짤막한 헝가리 문장들을 사용해서 팀원들은 헝가리 인사를 하면서 사람들을 초청했다. 우리는 마을을 돌면서 문화센터로 걸어갔고 우리가 탔던 버스는 아이들을 싣고 문화센터로 왔다. 문화센터로 들어가니 약 12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팀원들은 준비한 사역들을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감당했고 아이들을 잘 인도했다. 준비해간 미니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사진을 찍어주니 너무들 좋아했다. 가족사진을 찍는 분들도 있었다. 그 작은 사진기에서 나오는 사진이라도 갖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고 잘 준비해 왔다고 생각했다. 날씨가 많이 무더웠는데도 팀원들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어른들은 집회에 참석한 집시 어른들과 아이들을 위해 샌드위치를 만들어왔고 풍선만들기도 했다. 필요한 곳에서 부지런히 도와주시는 어른팀원들에게 참 감사하다.
센터로 돌아와 어른들은 부엌으로 아이들을 샤워장으로… 조금이라도 일찍 자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었는데도 저녁 예배 마치고 내일 사역 준비를 하고 나니 벌써12시가 되었다. 그래도 모두 건강하니 참 감사하다. 사역 편지를 쓰는 동안 아이들의 깊이 잠든 숨소리가 다정하게 들린다. 내일도 뉴라이프에서 쏘는 대포때문에 악한 영들이 무너지고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구원의 감격을 경험할 것을 기대하며 오늘을 마무리 한다.
셋째날
오늘은 Lak 마을에서 마지막 사역을 하는 날이다. 어제 저녁 예배 후 평가회를 통해 점검해야 할 부분들을 놓고 기도하고 다시 연습을 했다. 오늘은 부모님들이 오실 것이기 때문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절호의 챈스라 소홀히 준비할 수 없는 날이다.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강력한 성령을 부어주시기를 온 팀원이 함께 기도했다.
오늘은 큐티가 끝난 후 아침부터 분주했다. 수고하시는 엄마들이 만들어준 된장찌게와 밥, 돼지 불고기, 그리고 빵과 우유, 시리얼, 스크램블드에그등으로 아침 식탁이 풍성했다. 아이들은 본인들이 좋아하는 기호에 맞춰서 잘 먹었다. 아침 식사 후 마지막 점검에 들어갔다. 모든 무언극을 한번씩 더 연습을 했다. 그리고 팀원들의 영안이 열려서 지옥을 볼 수 있어서 영혼 구원의 긴박성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모두 준비된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Lak마을에 있는 교회로 가기 전에 문화 센터에 먼저 들렸다. 사역에 필요한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 갔는데 문화센터에 도착하니 성령님께서 땅밟기 기도를 시키셨다. 팀원들과 함께 문화센터 앞에 있는 풀밭을 민지가 기타를 치면서 찬양을 드리고 우리 모두는 기도하면서 걸었다. 오늘 강력한 복음이 증거 될 것이기 때문에 먼저 그 지역을 관장하고 있는 악한 영을 몰아내는 것이 선행되어야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성령님의 인도로 우리는 풀밭에서 주를 높였고 모두 완전 무장을 했다.
45인승 버스를 타고 마을로 들어갔다. 아이들을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어제 왔던 아이들은 기다리고 있었고 날씨가 너무 더워서 포기하고 있던 부모님들도 아이들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완전히 예전의 한국의 만원버스를 연상케 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에어콘도 소용이 없었다. 팀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찬양을 부르며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
오후 4시부터 공연이 시작되었다. 준비한 무언극을 올려드리면서 복음이 증거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직감했다. 초청이 진행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아이들은 영접기도를 또박 또박 한 목소리로 따라서 했다. 천상의 소리와도 같았다. 우리 아이들이 온 몸을 던져 증거된 복음이 이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무언극을 통해 주님을 본 것이었다. 어떤 이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휠체어에 앉아있는 자매는 손도 움직이지 못했는데 손을 들고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어제 배전도사님이 열심히 기도해준 자매이다. Lak마을에서 사역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박완주 선교사님께 팀원들을 축복해 주시도록 기도를 부탁했다. 선교사님은 눈물로 감사를 표시했고 우리 모두는 그동안 선교사님이 신실하게 사역한 결과임을 알기에 그 분에게 우리의 사랑을 전했다.
어른 팀원들은 매일 샌드위치를 준비했다. 아침, 저녁으로 팀원들 밥해주라, 샌드위치를 준비해 주라 너무나 수고가 많다. 혹시 지칠까 마음이 많이 쓰인다. 오늘도 박미영 선교사님과 함께 시장을 보고 돌아오신 시간이 거의 7시다. 그 때부터 팀원들을 위한 저녁 준비를 하신다. 있는 반찬으로 먹어도 되는데 어떻게든 잘 먹이고 싶으신 마음이 음식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10시부터 시작되는 저녁 예배를 참석하고 보통 12시가 넘어야 취침하신다. 선교의 현장에서 받는 사랑 주는 사랑이 함께 어울려 주님께 영광을 올린다. 뉴라이프 대포 기도를 내일도 기대한다.
넷째날
오늘은 볼드바 사역의 첫날이다. 날씨는 여전히 무덥지만 팀원 중 어느 누구도 날씨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주님이 어제는 살랑거리는 바람을 보내 주셨고 오늘은 마을 회관에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 사역이 진행되면서 팀원들이 점점 더 진지해지는 것을 본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틴에이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선교팀을 대표하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는 진지하고 신실한 태도로 사역에 임하고 있다.
오늘도 아침을 잘 먹고 엄마들이 준비한 주먹밥을 챙겨서 사역 현장으로 갔다. 마을 회관에 들려서 기도 모임을 한 후 미리 사역 준비를 다하고 볼드바 교회로 가서 점심을 먹은 후에 집시촌으로 갔다. 따가운 햇볕이 살을 파고 드는 것 같았지만 반갑게 맞이해 주는 집시들 때문에 충분히 견딜 만 했다. 죠나단이 앞에서 기타를 치고 전도사님이 찬양을 인도하면서 집시촌을 돌았다.. 벌거벗은 어린아이들도 뛰어나오면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들을 마을회관에 같이 가자고 초청했다. 집시 촌을 돌고서 버스로 오니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제 처럼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서서 왔다.
오늘은 사역 시간을 조금 줄이기로 했었다. 볼드바 마음에 초상이 났기 때문이다. 집시들은 모두 5시에 있는 장례식에 참석한다고 했다. 사역 시간을 한시간 정도 줄였고 우리도 장례식에 참여하는 것으로 했다. 정장로님께서 그렇게 하는 것이 선교사님이 입지를 더 확보해 주는 것 같다는 좋을 의견을 내주셔서 따르기로 했다.
여름성경학교를마치고 공연을 하는데 죠나단이 발을 삐어서 고통스러워 했다. 먼저 기도를 하면서 주님의 치유를 간구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뼈가 부러진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일단 엑스레이를 찍어 보기로 했다.. 사역의 마무리를 잘하고 나와 콜린, 그리고 박 사모님, 통역자 슈잔과 함께 응급실로 갔고, 나머지 사람들은 장례식에 참여하기로 했다.
병원에서 센터로 돌아오니 저녁 8시경이 다 되었다. 감사하게도 뼈는 상한데가 없고 인대가 찢어지지도 않았고 단지 심줄이 놀란 것으로 나왔다. 그 과정 중에도 죠나단은 유머를 잊지않고 잘 견뎌주었다. 페인도 점점 줄어서 참을 만 한 것 같았다. 이정도로 마무리 된 것은 분명히 뉴라이프 공동체의 대포 기도 덕분이다.
9시부터 시작 된 저녁 예배 시간때는 모든 팀원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렸고, 예배 후에는 내일 볼드바에서의 마지막 사역을 위해 준비시간을 가졌다. 죠나단이 다쳐서 할 수 없는 무언 극에 케빈이 들어가기로 했다. 죠나단은 케빈 대신에 사운드 시스템을 하기로 했다. 모든 일이 주안에서 잘 진행되고 있다. 보내는 자들과 가는 자들이 모두 함께 어울려 최선을 다할 때 기적이 일어날 것임을 믿는다. 내일도 많은 영혼이 구원받고 팀원들의 안전을 위해서 기도한다.
다섯째날
어제는 마을 회관을 빌려서 했기 때문에 환경이 쾌적하고 좋았다. 무더운 날씨에 편안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런데 오늘은 마을 회관을 빌릴 수가 없었다. 다른 행사가 하루 종일 열린다고 했다. 그러면 장소는 교회 밖에 없는데 모인 수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에어콘도 없어서 사람이 많으면 한증막처럼 될 것이 뻔했다. 볼드바에서 마지막 사역이기 때문에 공연도 해야하는데 별 해결점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 아침은 어제 밤에 타코를 먹고 남은 재료들로 맛있는 캐사디아를 만들어 주셨다. 아이들은 너무나도 행복하게 잘 먹었다. 아침마다 풍성하게 식탁을 차려 주시는 엄마들에게 많은 박수를 보낸다. 오전에 오늘 할 무언극들과 댄스를 점검하고 현장으로 갔다. 교회를 둘러보니 예배당은 약 7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곳이고 작은 방들이 있지만 우리가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마당은 넓고 좋은데 바닥이 시멘트라 울퉁불퉁했고 날씨가 더워서 바닥이 너무 뜨거웠다. 처음 계획은 교회 안마당과 양쪽 이웃 앞마당을 사용해서 천막을 치고 교회당 의자를 다 옮길 생각을 했었는데 교회 바로 옆집이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허락할 수 없다고 주인이 나와서 정중히 거절을 했다. 항상 교회 일에 협조적인 분이셨기 때문에 거절할 것이라고는 선교사님은 전혀 생각도 안하셨는데 좀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기 때문에 죄송하다고 하고 소액의 부조금을 드렸다.
많은 궁리 끝에 일단 예배당에서 시작하고 공연은 교회 앞 작은 잔디밭에서 하기로 했다. 청중들은 서서 보는 것으로 하고…. 그런데 예배당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졌다. 약 30분 정도를 내리는 것 같았다. 우리가 처음 계획하던 데로 진행이 되었다면 그 광경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우리의 계획을 막아 주신 주님이 감사하기만 했다. 주님은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비를 보내셔서 청소를 말끔히 해주시고 시멘트 바닥의 열기를 식혀 주셨다. 우리는 공연을 위해 의자를 교회 뒷마당으로 옮기고 공연을 할 수 있었는데 구름도 보내주셔서 편안하게 모든 순서를 잘 마칠 수가 있었다.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온 몸으로 복음을 전했고, 많은 이들이 주님께 재 헌신을 했다. 참으로 주님의 임재가 있는 능력의 순간들이었다.
내일은 케빈 선생님이 귀국하는 날이다. 오전 6:15분 비행기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새벽 2시에 나가야 한다. 정장로님과 진선생님께서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왕복 4시간의 거리인데 기꺼이 나가시는 두 분께 그저 감사할 뿐이다. 내일은 주일이다. 센터에서 박선교사님의 인도로 예배를 드리고 정오에 부다페스트로 출발한다. 미션 센터에서 두 교회가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정오까지는 비어 줘야 한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비젼 여행도 주님께 올려드린다. 장차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견문을 넓히도록 계획된 이번 비젼 여행을 통해 아이들이 많이 성장하기를 기도한다. 죠나단은 오늘 현저하게 좋아졌다. 함께 돕지 못해 안달하는 죠나단이 기특하고 고맙기만 하다. 케빈 선생님이 하던 미디아 사역을 잘 인도 받아 열심히 하고 있다. 부다페스트-비엔나-그라치-크로아티아(플리트 비체)-슬로베니아-햘슈타트-잘츠부르크-프라하- 캠니츠-드레스덴을 거쳐 베릴린으로 들어가는데 사역은 캠니츠 노방 전도 사역을 기점으로 다시 시작된다.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기도를 뉴라이프 가족들에게 부탁드린다.
비젼트립 첫째날: 헝가리 부다페스트
케빈이 새벽에 잘 떠나서비행기에 올랐다는 소식을 주었다. 진선생님께서 security check을 마치고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오셨다고한다. 세심한 배려가 참감사하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부다페스트를 향하여 정오에센터를 떠났다. 미쉬콜츠에 있는 작은몰에 들러서 점심을 먹기로했다. 샤핑 몰에 있는 food court에 가니 맥도날드, KFC, 이탈리안 음식, 그리고중국 음식을 파는 곳이있었다, 아이들은 이미 정해진 meal group대로 정해진 한도 내에서 본인들이 원하는 음식을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일인당 식사가 약 8불 정도인 것같다. 헝가리는 그래도 음식값이 저렴하다는 생각이 든다. 화폐는포린트(forint)를사용한다.
다음에 멈춘 것은 세인트앤드류 라는 마을로 슬로베키아와 접해있는 국경도시인데 헝가리의토산품과 전문 예술인들의 작품들을 파는 곳이다. 레스토랑과 토산품, 그리고 아트 작품들이 어우려져 있는 작은도시였다. 투어 그룹별로 한시간의샤핑 시간을 주고 내보냈다.
아퀸쿰(Aquincum)에들렸다. 이곳은 로마 군사유적지이다. 아퀸쿰은 여러 도시에그 유적이 남아있는데 부다페스트는 다뉴브 강 주변에 있었다. 아퀸쿰은로마시대에 군인을 주둔시키기 계획적으로 세워진 도시이다. 이미박물관의문이닫혀서들어가지못하고바깥에서볼수있는도시의잔재만보고왔다. 안드라시 우짜라는 도로를 따라가니 영웅광장이 나왓다. 이 도로의 주변에는각국의. 대사관들이 있는중요한 도로이다..
갤러르트언덕 (Gellert Hill and Statue)을 오르니 부다페스트 시내가 한 눈에 다 들어온다. 부다페스트의 명성답게 야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박선교사님이 다뉴브 강을 따라 주변의 야경을 보는 배을 예약해 놓으셔서 서둘러 내려갔다. 다뉴브 강을 따라서 관광보트들이 운영을 하는데 선교사님의 인맥으로 $200 정도에 배를 빌릴 수 있었다. 기타와 잼비를 가지고 배에 올라 예배를 드렸다. 선상의 예배는 주위의 야경과 어울려 우리의 마음을 촉촉히 적셨다. 선상 가득히 울리는 아이들의 심령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은 우리 모두를 주님의 임재로 인도했다. 참으로 귀한 예배를 올려드렸다. 약 45분의 관광을 마치고 박선교사님 가정, 정 장로님 가정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정장로님은 내일 아침 일찍 샌프라시스코로 돌아가신다. 모두 손을 잡고 기도를 드린 후에 헤어졌다. 이번 비젼 트립동안 지속적으로 드려지는 예배를 통하여 팀원들의 영성이 더욱 강건하기를 기도한다. 내일은 비엔나를 향햐여 출발한다.
비젼트립 둘째날: 오스트리아 비엔나
오전 8시에 비엔나를 향하여 출발했다. 부다페스트에서 약 3시간 거리이다. 버스에서 경건의 시간을 가졌다. 팀원들에게 시편 50편을 읽고 묵상하도록 한 후에 배전도사님과 함께 말씀을 증거했다. 하루 시작을 축복하시는 주님을 더욱 신뢰할 것을 증거했고 하나님의 꿈을 꾸는 자들이 되자고 격려했다.
비엔나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은 후에 가이드를 만났고 또 체코에서 수고하시는 김현섭 선교사님을 만났다. 비엔나에서부터 체코 도착까지 우리를 도와 주시기 위해 어려운 걸음을 해주셨다. 놀라운 주님의 예비하심이었다. 가이드는 버스로 비엔나 외곽 도로를 돌면서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다. 밖에는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3시간 계약을 했는데 한시간 반이 되도록 계속 외곽도로만 돌아서 물어 보았다.
언제 Walk Tour를 할 것인지를…. 그랬더니 버스 투어로 계약이 되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서로 잘못 알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Walk Tour를 요청했는데 우리가 버스를 이미 빌렸다는 정보를 버스 투어로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좋은 가이드를 만나서 곧장 Walk Tour로 바꿨다. 하지만 이 모든 오해도 하나님의 계획하심이었음을 안다. 만약 우리가 Walk Tour를 처음부터 했다면 소나기 때문에 할 수가 없었을텐데 버스투어로 오해를 한 덕분에 비엔나 외곽도 볼 수 있었다.
Walk Tour로 바꿀 때도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조금 걸으니 곧 햇볕이 나고 날씨가 개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과 계획임을 알고 감사드렸다.
비엔나를 구경을 마치고 그라츠 (Graz) 라는 도시로 출발했다. 오늘 밤은 그곳에서 자고 내일은 크로아티아로 출발한다. 그라츠로 오는 길에 맥도날드에 들려서 저녁 식사를 하고 옆에 있는 마켓에서 내일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 재료들을 집사님들이 사가지고 오셨다. 팀원들을 잘 먹이기 위해서 수고를 하시는 엄마들의 사랑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버스 안에서 저녁 예배를 드렸다. 민지가 기타를 치고, 제이슨이 잼비를 치면서 예배를 인도했다. 찬양이 버스 안에 가득했고 아이들은 진지하게 예배를 드렸다.
전도사님이 말씀을 증거하셨다. 예배 후 광고를 통해 어디에서 예배를 드리든지 무소 부재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정성껏 드리자고 격려했다.
앞으로 비젼 트립 동안은 아침 저녁으로 버스 안에서 예배를 드릴 것이다. 죠나단은 어려움 없이 잘 걷고 있다. 오늘은 애니가 버스 안에서 토했는데 그 후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미소 된장국과 김치 그리고 밥만 먹었다. 버스 앞자리에 앉도록 했는데 일단 잠을 계속 잤다. 많이 피곤한 모양이었다. 내일은 여정이 길어서 버스 안에서 점심을 먹어야 한다. 내일도 도우시는 주님을 기대하면서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모든 팀원들이 여정을 잘 감당하도록 기도를 뉴라이프 공동체에 부탁해본다.
비젼트립 셋째날
비엔나 숙소에서아침을 먹은 후크로아티아의 프리트비체(Plitvice Lakes National Park)를 향해서 출발했다. 감사하게도 애니는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되었고 죠나단은 발이 완전하게 나은 것 같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선교에 나선 서진이가 Homesick으로 조금 힘들어 한다. 낮에는 즐겁게 지내다가 밤에는 마음이 힘든 것 같다. 서진에게는 오히려 사역을 할 때가 더 쉬운 것 같다. 팀원들에게서 해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비젼 트립 기간에 더 지치고 힘들어 함을 느낀다.
비엔나에서 크로아티아로 가려면 슬로베니아를 약 30분쯤 지나가게 된다. 그래서 두 국경을 통과해야 한다. 슬로베니아를 나갈 때와 크로아티아로 들어갈 때이다. 슬로베니아를 나갈 때는 모두가 밖으로 나와서 도장을 받아야 했고 크로아티아로 들어갈 때에는 관계자가 버스에 올라와서 도장을 찍어 주었다. 약 4시간 정도를 달리니 프리티비체가 나왔다. 도착해 보니 공원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이다. 입장권을 사는데 한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기도하고 오피스로 들어갔다. 내가 공인된 가이드가 아닌 것과 미국에서 온 것을 이야기 하고 오피스에서 표를 살 수 있는지 물어 보았다. 처음에는 공인된 가이드만 할 수 있다고 거절했는데 조금 더 사정을 하니 허락해 주었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자연은 시절을 쫒아 변하는 것을 곧장 알 수 있었다. 4월경에 방문했을 때는 산이 온통 작은 폭포로 가득 차고 물안개까지 있어서 신비로움을 자랑했는데 여름에 오니 나무들이 우거져서 작은 폭포를 다 가려버렸다. 아이들에게 그 광경을 보여주지 못함이 아쉬웠다. 그렇지만 신비하게 아름다운 호수의 색깔과 무성한 나무들의 우거짐과 힘차게 떨어지는 폭포는 장관이었다.
프리티비체를 벗어나 숙소가 있는 자다르로 떠났다. 이 도시의 특징은 작은 반도에 베네치아가 만든 성벽이 바다 쪽 일부를 제외하고 병풍처럼 도시를 휘감고 있다. 자다르는 유서 깊은 곳이로 아드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만나게 되는 곳이다. 바로 바다 오르간(Sea Organ)이 있기 때문이다. 이 조형물은 바닷가 산책로를 따라 직경이 각기 다른 오르간 파이프들을 75m 길이에 걸쳐 수직으로 박아 놓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르간 모습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소리를 직접 들어보기 전엔 실감이 안 난다. 니콜라 바시츠(Nikola Basic)라는 크로아티아의 천재적인 설치예술가가2005년에 만든 세계 최초의 바다 오르간이다. 유럽 공공장소 설치예술상을 받은 작품으로 파도가 철썩거리며 바람을 불어넣으면 27개의 오르간 파이프에서 각기 다른 음이 흘러나온다. 계단에 앉아 있으면 “뿌~, 승~, 삐~” 하고 흘러나오는 소리들은 마치 고래들의 노래처럼 신비하게 들린다. 파도가 거의 없는 고요한 바다일지라도 작은 파도의 미동에 따라 24시간 쉬지 않고 부드럽게 울린다.
아이들은 자다르 해변에서 다이빙을 하면서 즐겼고 많은 관광객에게 그들은 또 하나의 관광을 선물했다. 어디를 가든지 활발하게 지내는 아이들이 자랑스럽다. 내일은 또 하나의 명물인 슬로베니아에 있는 포스토이나 동굴을 보려 간다. 우리 숙소에서 약 4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비젼트립 넷째날
버스 운전기사들이 어제 늦게까지 운전을 했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는 조금 늦게 8시 45분에 출발하는 것으로 했다. 집사님들은 아이들 아침과 차 안에서의 점심을 위해 아침 일찍 마켓에 갔다 오셨다. 버스 안에서 아침 예배가 끝난 후 지미의 생일을 축하했다. 이틀 전 식당에서 위연실 집사님과 지미의 생일을 동시에 축하했었다. 전도사님이 지미의 장점인 진실한 성품과 뒤에서 열심히 섬기는 신실함을 이야기 했고 우리 모두는 동의했다. 그리고 신나게 생일 축하 노래를 했다. 위연실 집사님 것도 함께… 그리고 위 목사님 것도 함께…
오늘은 아침과 점심을 다 차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약 4시간 30분이 걸리는데 중간 휴식과 국경 통과까지 감안하면 약 5시간 이상이 걸릴 것이다. 우리가 오늘 방문할 동굴은 슬로베니아에 위치하고 있다. 슬로베니아는 동유럽 최초로 EU에 가입하고 유로화를 사용한 국가로 동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총 인구가 약 200만명 정도이다. 2만 평방킬로미터의 작은 국토이고 인구 밀도도 낮다. 우리가 방문할 포스토이나 동굴은 세계에서 두번 째로 긴 약 20 킬로미터의 동굴이다. 세계 최초로 관광객을 위해 개방된 동굴이며 슬로베니아에서 최초로 전기를 사용한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1:30분에 예약을 해 놓았는데 도착 시간이 한시간 가량 늦어질 것 같아 사무실로 연락을 하니 도착하는 데로 와서 시간을 바꾸라고 한다. 계속되는 산길에 미쉘과 애니가 멀미가 난다고 앞자리로 왔다. 오늘도 점심에 샌드위치를 차 안에서 만들었다. 먼저 빵을 나누어 주고, 마요네즈와 겨자를 발라준 다음 잎상추를 준다. 그리고 햄, 살라미와 치즈를 배분한다. 이 일을 하는 동안 버스는 계속 산길을 달린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멀미가 날 판에 움직이는 차 안에서 어른들은 열심히 봉사를 한다. 신기한 것은 앉아만 있으면 멀미가 나는데 봉사하는 동안은 멀쩡하다. 아이들은 고맙게도 열심히 먹어준다.
동굴에 도착하니 4시 입장만 가능하다고 한다. 약 한시간의 시간이 남아 자유시간을 주었다. 그동안 나의 일은 “저녁은 무엇으로?” 이다. 30명이 움직이니 식당에 들어가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 여기 저기 돌아보니 피자 집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동굴에 들어 갔다 돌아 올 시간에 맞춰 준비해 주도록 예약을 했다. 피자 값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음료수 값이 만만치 않았다. 작은 콜라 한 병에 3.50유로나 했다. 달러로 하면 약 4불이 넘는다. 아이들도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는지 음료수는 안 시키고 물로 마시겠다고 했다. 피자를 신나게 먹고 차에 오르니 이미 7시가 되었다. 앞으로 4시간 정도를 더 가야 햘슈타트 근방에 있는 숙소가 나온다. 버스 기사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반하셨는지 너무 친절하게 우리의 스케쥴에 맞추어서 잘 해주신다. 도착하기 한 시간 전에 버스에서 저녁 예배를 드렸다. 비록 버스에서 드리지만 진지하게 열심히 예배를 드린다. 아픈 애들이 없이 모두 건강함이 감사하다. 그리고 서진이도 많이 안정이 되어 괜찮아졌다. 내일도 주님의 날개 그늘에 의지하며 새로운 도시로 이동을 한다.
비젼트립 다섯째날
숙소에서 조식을 한 후에 햘슈타트 (Hallstatt)를 향해 떠났다. 숙소에서 햘슈타트까지는 약 한시간 정도가 걸렸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슈라딩 (Schladming)이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은 가보지 않은 곳에서 숙소를 정함이 모험이나 마찬가지인데 어쩌면 그렇게도 잘 정하게 해 주셨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슈라딩이라는 숙소도 햘슈타트 시내의 숙소는 너무 비싸 조금 떨어진 이 도시에 잡았는데 그 마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탄성이 절로 나왔다. 산길을 지나서 햘슈타트까지 가는 동안 오스트리아의 경치는 하나님의 창조의 솜씨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어제 보았던 포스토이나 동굴의 기이 함도 오늘 보는 오스트리아의 풍경도 모두 하나님만이 만들 수 있는 작품이다.
버스 안에서 아침 경건의 시간을 갖고 자연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발견하기를 팀원들에게 말했다. 햘슈타트에 도착하기 전에도 아름다운 광경을 많이 보았지만 햘슈타트는 그 아름다움의 절정인 것 같았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1997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관광 명소이다. 호수를 배경으로 자리한 예쁜 목조 주택에는 발코니에 꽃들로 더 평온해 보인다. 호수 주변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 이상이다. 한 시간의 자유 시간 밖에는 줄 수 없었던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햘슈타트를 떠나 짤스브르크로 갔다. 뮌헨으로 부터 동쪽으로 약 150km, 빈으로 부터는 서쪽으로 300km 거리에 있는 잘츠부르크는 알프스 산맥 북쪽 경계의 잘차흐 강 양쪽 기슭에 위치해 있다. 모쨔르트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잘츠부르크 성당과 미라벨 정원 등의 바로크 양식 건축물과 구조물들이 유명하다. 잘츠부르크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며, 성수기에는 현지 주민들보다 관광객들이 훨씬 많은 때도 있다고 한다. 아이들은 성당이나 미라벨 정원등은 별 관심이 없고 사운드 워브 뮤직을 촬영한 곳이라는 것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햘슈타트와 짤스브르크를 지나 프라하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었다. 오는 길에 공사가 있어서 버스가 길을 잘못 들어선데다가 저녁 식사를 하고 나니 벌써 9시가 되었다. 프라하 한인 교회를 하시는 박상욱 선교사님께서 아파트먼트 호텔을 예약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너무 죄송했으나 반갑게 맞아 주셨다. 내일은 종일 프라하 구경을 한다.
캠니츠에서
호스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마치고 짐을 들고 나가니 새로 바뀐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보다 더 나은 버스였다. 운전자도 친절하신 분이었다. 호스텔에서 아침 예배를 드리며 비젼 트립에서 다시 미션으로 전환하는 마음의 각오를 했다. 약 3시간이 지난 11:45분 경에 캠니츠 교회에 도착했다. 교회는 사무실 건물 2층에 있었다. 감사하게도 호스텔의 첵인이 보통 4시인데 12시경에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모두 짐을 푼 후에 식당으로 내려가 샌드위치를 먹었다. 프라하에서 떠나기 전에 준비한 빵에 각자 원하는 야채를 넣어서 먹었다. 정말 맛이 있었다.
잠시 휴식 후에 교회로 걸어갔다. 교회와 호스텔은 걸어서 2분 거리에 있었다. 오후 5시에 있을 거리 전도를 준비했다. 캠니츠 교회의 독일 형제들과 함께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지를 상의했다. 우리들이 준비해 간 무언극 중간 중간에 찬양을 넣고 마지막에 복음메세지를 선포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5시에 현장으로 가니 주말에 열리는 여러가지 이벤트로 사람들이 분주함을 보았다. 독일 형제들이 선택한 자리에 음향 시설들을 설치했다. 찬양 한 곡을 하고 바로 무언극으로 하기를 원했지만 심령들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 찬양 두 세곡을 더 하도록 부탁드렸다. 무언극이 시작되었고 아이들은 온 몸으로 복음을 전했다. 집사님들과 아이들은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나누어 주고 영어가 가능한 사람을 만났을 때는 직접 복음을 전했다. 그 중에 한 청년은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잘 못 했는지를 이야기 했다. 주님의 이름으로 있었던 유럽에서의 전쟁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 청년에게 왜 주님만이 길임을 다시 설명하고 함께 교회로 가도록 초청하니 따라 왔다. 조 선교사님 사모님은 무슬림 청년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셨다. 반응이 좋았다고 하시면서 여러 명의 이름을 적으셨다고 좋아 하셨다. 조금이라도 이 두 분의 사역에 도움이 되길 기도한다.
아이들 중에 몇명이 감기 기운이 있다. 레이쳘, 서진이 목이 아프다고 하고 진용이는 기침을 한다. 주님의 긍휼을 바란다. 모두 강건하게 마지막까지 잘 감당하기를 기도한다.
캠니츠에서 주일을
어제 거리 전도 사역을 마치고 오늘은 교회에서 무언극을 하기로 했다. 독일 청년들의 요청이었다. 캠니츠 교회는 12개의 언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한국 목사님이 독일 교회를 하는 것인데 난민들이 몰려오면서 국제 교회로 바뀐 것이다. 작년 4월에 선교사님 부부를 만났을 때만 해도 난민들이 교회에 가득히 모여 예배를 드린다고 하셨는데 요즈음 떠나기도 하고 주춤하다고 하셨다. 캠니츠 교회는 어렵고 힘든 분들이 많다고 한다. 모두가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라고 한다. 그래선지 선교사님 가정도 많이 지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정적으로는 큰딸이 유방암에 걸렸는데 뼈까지 전이가 되었다고 한다. 사모님이 딸 집에 가셔서 손녀를 데리고 오셨다. 참 예쁜 아이고 똑똑하게 말도 잘했다. 가장 필요한 시기에 선교 팀이 왔다고 하면서 사모님이 많이 좋아하셨다.
예배를 마치고 나니 교제의 시간이 됐는데 빵과 물, 그리고 쥬스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왔다고 풍성하게 준비하신 것 일 텐데도 작은 소찬의 식탁이었다. 드레스덴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서둘러 교회를 떠났다. 가까운 곳에 맥도날드가 있어서 점심을 해결했다. 드레스덴에 도착하니 오후 3시 경이 되었다. 안창국 선교사님이 나오셔서 가이드를 해주셨다. 날씨가 많이 무더웠다. 특별히 유럽은 음식값보다는 물 값이 비싸다. 보통 물 한 병이 약 3달라이다. 더군다나 레스토랑에서 물을 시키면 4달라가 훌쩍 넘는다. 주일에는 모든 마켓이 문을 닫고 관광지에 있는 레스토랑만 문을 연다. 할 수 없이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화장실도 사용하고 물도 사 먹었다. 드링크 하나에 4불 50전 정도 하는데 사이즈가 무척 작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전혀 만족이 안될 정도인데 리필도 없으니 할 수 없이 간신히 목만 축이고 일어났다. 오는 길에 연실 집사님과 수진 집사님이 나누어서 냈다고 하신다. 아이들을 위해서 수고해 주시는 것도 너무 감사한데 넉넉하신 마음에 주님의 은혜가 머물기를 기도한다.
드레스덴을 떠나 베릴린에 도착하니 저녁 10시 20분이 되었다. 함 선교사님의 큰 아들인 의준 형제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오늘부터 일주일 간은 함 선교사님이 빌려서 사용하고 계시는 독일 교회에서 머문다. 침대가 없어서 카펫에 침낭을 깔고 자야 한다. 함선교사님이 어른들을 위해 매트 몇 개를 구해 주셨다. 아이들을 당연히 카펫인 것만도 감사하며 자리를 편다. 함선교사님의 교인인 청년 15명과 함께 이번 사역을 하기로 했다. 오전에는 훈련 받고 오후에는 노방 전도를 나간다.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직도 목이 아픈 아이들이 있어서 기도한다.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모두 강건 하기를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베를린에서의 사역 첫 날
불편할 것 같은 잠자리였지만 모두 잘 자고 일어났다. 6시 30분에 기상하고 7시에 신체 단련 시간이다. 지난 일주일 간의 비젼 여행으로 피곤해져 있는 육신을 새롭게 단련해 주는 시간이다. 연실 집사님은 선교사님과 함께 가까이에 있는 마켓에 아침 빵과 점심 재료를 사러 갔고 우리는 늦어진 아침 식사 시간을 운영시간으로 사용했다. 잠시 후에 차려진 아침 식사는 너무 훌륭했고 유럽에서 맛 볼 수 있는 여러가지 크림 치즈를 맛 볼 수 있었다. 신선한 빵과 야채로 가득 찬 식탁은 마음을 시원케 했다.
9시20분 경에 시작된 아침 예배는 주의 성령이 충만한 귀한 예배였다. 43명의 (베릴린 중앙교회 청년 15명) 팀원 전원이 한 마음이 되어서 주님을 높였고 이들이 드리는 기도의 소리는 주의 보좌를 흔드는, 한 영혼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간구가 실린 호소였다. 베릴린 중앙 교회는 청년들이 약 40명 가량 출석하는 교회이다. 베릴린 중앙 교회를 위한 우리의 미션은 이들에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 증거의 자료들을 전수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부터 “Set Me Free”를 가르치기로 했다. 3일 후 쯤 현장에서 직접 해 보도록 할 예정이다. 그래야 그들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은 후 현장으로 나갔다. 오늘은 유럽을 연결하는 하우프트 반호프 (중앙 역)에서, 티어 가르덴 (Tiergarten), 브란덴 부르거 토어(Brandenburger Tor)에서 공연을 했다. 티어 가르덴에서 공연을 하고 다음 장소로 옮기는데 우리가 가는 방향으로 하늘에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팀원들은 모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임재하심을 느꼈다. 브란덴 부르거 토어를 향해서 가는데 귀에 익숙한 음악이 들려왔다. 부지런히 가보니 다른 선교 팀이 우리처럼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한 교회에서 온 것이 아니고 여러 곳에서 오신 분들이 훈련을 받고 거리 전도를 나오는 단체에서 온 것이었다. 진 선생님께서 우리도 이곳에서 공연을 하자고 하셨다. 그리곤 선교 단체의 대표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무언극 하나만 할 수 있다는 마지못한 허락을 받았다. 우리 아이들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Set Me Fee를 통해 온 몸으로 복음을 전했다. 지켜보던 단체의 대표와 그 단원들은 함께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렸다. 그리고 한가지 제안을 했다. 그들은 이번 토요일까지 1-6시까지 공연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고 했다. 자신들이 가는 곳에 우리가 오면 자신들의 시간대에 우리가 공연해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내일은 그들과 함께 할 예정이다. 울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이 함께 연합함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그 십자가도 우리가 함께 공연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여주신 것이었다.
저녁식사의 메뉴는 김치찌게였다. 모두 실컷 맛있게 먹었다. 은영이가 참기름과 깨로 무우 말랭이 무침을 마무리 했다고 한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오늘 저녁은 베릴린 중앙교회 찬양팀과 함께 연합으로 예배를 인도했다. 연합의 날이었다. 주님은 우리를 만나 주셨고 강한 임재 안에 치유를 위해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다. 아픈 아이들을 앞으로 나오게 하고 간절히 기도했을 때 서진이가 목의 아픔이 현장에서 낫는 경험을 했다. 기뻐서 말하는 그 아이의 눈에서 진정한 기쁨을 보았다. 내일도 아이들 모두 강건하게 잘 감당할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아이들이 예쁜데 주님은 얼마나 예쁠까?! 그래서 이들을 향한 축복의 기도가 절로 나오는데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 전능하신 그 분께 이 아이들의 장래를 맡긴다.
베를린 사역 둘째 날
아침에 곤히 자는 아이들을 깨우기가 안타까워 음악을 틀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찬양에 맞추어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일어나기 시작했다. 오늘도 7시 신체단련 시간을 시작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베릴린 교회 청년들도 우리들의 진행에 잘 협조를 해 주고 있다. 신체 단련 시간 후 아침 샤워를(머리를 감지않고 몸만 씻는 것) 하고 맛있는 아침 식사를 한다. 매일 신선한 빵과 야채가 제공되는데 오늘은 블루베리와 요구르트도 나왔다. 43명의 식사를 책임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수진 집사님, 성은 집사님, 연실 집사님, 인선 집사님께서 즐겁게 섬겨 주신다.
오전은 식사 후 예배가 있고 곧장 이어서 베릴린 중앙교회 청년들에게 “Set Me Free”를 가르쳐 주고 점심을 먹은 후에 현장으로 나간다.
오늘은 페르시안 교회 목사님께서 우리를 방문했다. 24년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란에서 성경 번역 사역을 하시다가 박해를 피해 독일로 오셔서 여러가지 사역을 하시다가 페르시아 교회로 부임하셨다고 한다. 이란의 형편도 물어보고 난민의 물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도 물어보고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었다. 아이들에게도 유익할 것 같아 목요일 저녁에 오셔서 삶을 나누어 주시라고 부탁드렸다. 목숨을 걸고 주님을 믿는 이들을 생각하면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오후 광장 사역에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 주셨다. 우리 아이들은 더욱 담대해졌고 43명이 10장씩 가져간 전도지는 다 나누어 주었다. 우리가 열심히 씨를 뿌리면 주님께서는 여러 통로를 통해 무언극을 관람한 영혼들을 구원해 주실 것을 기도했고 그렇게 하시리라 믿는다. 두 곳에서 공연을 하고 난 후에 각 팀 별로 6시까지 숙소로 돌아오라고 했다. 각 팀마다 독일 형제 자매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모든 팀이 6시까지 잘 돌아왔는데 정웅 팀이 3분 늦게 도착했다. 이번에 벌칙은 1분에 팔 굽혀펴기 20개였다. 총 8명이 3분 늦게 들어 왔기 때문에 480번의 팔 굽혀펴기를 했다.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나면 잘 하는 팀원들이 갯 수를 채웠다. 벌 받으면서도 박수 받고 480개를 끝낸 본인들도 흡족한 표정이다.
오늘 저녁 메뉴는 닭도리탕이었다. 정말 맛있었다. 독일 감자가 유난히 맛있었다. 오늘 식사 당번들은 설거지를 하느라 너무 애썼다. 설거지 기계가 고장이 나서 손으로 모든 것을 다했다. 마치고 난 후에 몸에서 설거지 냄새가 난다고 야단들이다. 바라보는 어른의 입장에서는 대견하고 예쁘기만 했다. 예배를 통해 다시 마음을 다지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제는 눕기만 하면 곧장 잠들을 잔다. 아픈 아이들이 모두 회복되었다. 내일도 주님의 은혜를 바라보면서….
베릴린 사역 세째 날
오늘은 홀러코스트 메모리얼을 방문하고 공연은 도심 광장에서 하기로 했다. 홀로코스트(Holocaust) 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나치당이 독일 제국과 독일군 점령지 전반에 걸쳐 계획적으로 유태인과 슬라브족, 집시, 장애인, 정치범 등 약 1천1백만 명의 민간인과 전쟁포로를 학살한 사건을 의미한다. 사망자 중 유태인은 약 6백만여명으로, 그 당시 유럽에 거주하던 9백만 명의 유태인 중 약 2/3에 해당한다. 유태인 어린이 약 백만 명이 죽었으며, 여자 약 2백만 명과 남자 약 3백만 명이 죽은 것으로 파악된다. 유태인과 기타 피해자들은 독일 전역과 독일 점령지의 약 4만여개의 시설에 집단 수용, 구금되어 죽었다.
베를린이라는 거대 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나치의 대학살로 희생당한 수많은 유대인들을 기리기 위해 2005년도에 설립된 기념관이다. 1980년대 중반 유태인 단체들이 설립을 건의한 이래 여러가지 설계안을 두고 고민한 끝에 1999년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의 설계안으로 공사가 확정되었고, 제 2차 세계 대전 종전 69주년인 2005년에 그 문을 열었다. 겉만 보면 사각기둥들이 늘어선 거대한 광장 만을 볼 수 있다. 축구장 3개를 합친 크기의 광활한 광장 위로 총 2천 7111개의 사각기둥들이 빽빽히 자리잡고 있다. 그냥 보면 각각의 기둥들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넓직한 구조물들의 사이 사이를 거닐다 보면 어느 순간 압사당할 듯이 거대한 구조물 사이에 놓여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는 바로 중앙을 향해 들어갈수록 땅이 움푹 꺼지는 구조 때문이다. 사실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하늘은 까마득해지고 마치 미로 속에 갇혀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건축가가 의도한 바다. 당시 수용소에 갇혀있던, 그리고 가스실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야만 했던 유대인들의 답답하고도 절망스러운 심정에의 공감을 유도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것이다. (THE ARTIST 매거진=한임연 에디터)
메모리얼 박물관은 인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조별로 나누어 들어갔다. 출구로 나오는 인원에 따라서 같은 수의 사람만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선교사님과 일행들이 출구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우리 팀은 모두 들어갔다. 첫 전시장부터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천천이 움직이기 때문에 당시의 있었던 모든 정보를 자세히 읽을 수 있었다. 가슴이 먹먹해 지고 그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공포가 느껴졌다. 인간의 사악함의 무한성을 보는 것 같았다. 이런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죽으셨다는 것이 감격 그 자체이다. 메모리엘 박물관을 나온 후 걸어서 도심 광장으로 갔다. 그곳에 YWAM 선교 단체가 막 공연을 마친 후 였다.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지를 보여주셔서 감사했다. 우리 아이들도 많이 격려를 받았다.
오늘은 32번째 예배를 드렸다. 선교는 일보다 예배자로 팀원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배자로서 일을 해야 축복의 물줄기를 끌어 올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배 전에 한 아이가 와서 헝가리에서 예배드릴 때 충분히 하나님을 갈망하지 못했으니 예배 시간에 긴 기도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오늘은 그 아이의 요청처럼 많은 중보기도를 드리며 기도에 집중했다. 예배자의 갈망이 있는 복된 예배였다.
베를린 사역 네째 날
오늘은 베를린 장벽과 알렉산더 플라자에서 공연을 했다. 베를린 장벽을 East Side Gallary라고도 부른다. 장벽 가득히 다양한 쟝르의 미술 작품들이 그려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분단되면서 베를린도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분단되었다. 서베를린의 주권은 서독에 있었지만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에 완전히 둘러싸인 월경지가 되었다. 동베를린은 동독의 수도가 되었고, 서베를린은 서독일의 수도가 되지않고 뮌헨이 서독일의 '임시 수도'가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연합국 4개국이 베를린을 차지하여, 그들의 점령지를 4개로 나누었다.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려는 동베를린 시민들이 늘자, 이를 막기 위해서 독일민주공화국 정부는 1961년에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경계에 베를린 장벽을 세웠는데 냉전의 상징이 되었다
1989년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은 해체되고, 1990년 독일이 전격적으로 통일되면서 베를린은 연방 주 지위를 얻었다. 도시이자 독일의 연방주인 곳은 함부르크와 브레멘 뿐이다. 통일 이전부터 동서독 모두의 수도였기에 별다른 이견없이 1991년에 수도로 확정되었다.
베를린 장벽에서 공연을 하고 알렉산더 플라자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가 처음에 생각했던 장소에는 많은 임시 상점들로 가득차 있었다. 프라자의 맞은 편으로 옮기니 그래도 공연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백화점 근처였다. 한참 공연을 하고 있는데 경찰이 왔다. 우리가 공연하는 곳은 오디어를 사용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무언극 “결단의 시간”이 약 반 정도 진행되었는데 경찰이 온 것이다. 경찰과 계속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끄니 무언극이 거의 끝날 때가 되었다. 2,3분 후에 떠나겠다고 하니 허락해 주었다. 알렉산더 광장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하나님이 우리를 독일에 보내신 이유는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도 보내셨지만, 연약한 성도들과 방황하고 있는 영혼들을 위해서도 보내심이 분명하다.
공연을 마치고 나니 장대비가 쏟아졌다. 아이들이 모두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공연할 수 있도록 비를 조절하신 하나님께… 홀러코스트에 다시 가려고 했던 계획을 포기하고 아이들에게 자유시간을 주었다. 오늘은 부모님들도 자유시간을 드렸다. 지금까지 아이들 식사 때문에 아무데도 못 가셔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자유시간을 드렸다. 7시까지 돌아오지 못하면 1분에 20번 팔굽혀펴기가 벌칙이다. 그들에게는 너무나 즐거운 벌칙이기도 하다. 모두 박수치면서 신나게 응원하니까….내일은 비텐베르그에 간다. 아침 10시에 출발해서 저녁 7시게 들어 올 예정이다. 비텐베르크는 독일 동부 작센안할트 주에 있는 도시.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킨 곳으로서 ‘루터의 도시’란 별명으로 통한다. 루터가95개 논제를 문에 써 붙인 캐슬 교회, 루터가 강론한 시립 교회, 루터가 살았던 수도원 등이 남아 있으며, 이들 종교개혁 관련 유적지들은 루터의 고향 아이슬레벤의 유적지와 함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비텐베르크 대학교는 할레의 대학교와 합병하여 현재 할레에 있는 할레 비텐베르크 마르틴 루터 대학교로 남아 있다. 팀원 모두가 강건하며 맡은바 일들을 잘 해 주니 참 감사하다.
베를린 사역 다섯째 날
종교 개혁 500 주년을 맞이한 비텐 베르크는 순례객과 관광객들로 붐볐다. 베를린에서 약 1시간 10분정도 기차를 타고 갔다. 어제 저녁 늦게까지 주먹밥 거리를 여자 집사님들이 준비해 주셨고 아침에 설거지 당번이 아닌 아이들이 함께 도와서 점심으로 주먹밥을 준비했다. 아침에 예배를 드리고 나니 기차를 탈 시간이 촉박했다. 걸어서 역까지 10분이 걸리는데 그 기차를 놓치면 비텐 베르크로 가는 기차를 놓치게 된다. 팀원들은 모두 백 팩을 메고 스피커를 들고 무언극에 필요한 모든 도구가 든 가방과 점심으로 먹을 주먹밥과 빵이 든 가방을 메고 열심히 뛰었다. 역에 도착하니 조금 후에 기차가 도착했다. 모두 열심히 잘 뛰었다고 서로를 격려했다.
비텐 베르크로 가는 기차를 탄 아이들이 아래 칸에서 열심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후에 몇 아이들이 시끄럽다고 어른들이 타고 있는 칸으로 오더니 곧 잠이 들었다. 비텐베르크에 내리니 종교 개혁 500주년 답게 들어가는 입구에 많은 배너들이 걸려있었다. 우리는 일단 슐로스 교회(Schlosskirche) 로 갔다.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이 있는 교회로 유명하다. 교회 안을 둘러보고 난 후에 공연할 장소를 찾으니 교회 바로 앞에 있는 공터가 적당한 것 같았다. 일단 교회 옆에 있는 안내소로 가서 공연하기 위해 허가가 필요한가를 물으니 20분은 그냥 할 수 있다고 했다. 아이들이 음악을 틀고 공연을 준비하니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다시 온 몸으로 복음을 전했다. 공연이 끝나니 몇 사람들이 와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주님이 알려 주신 것처럼 이미 주님을 알고 있지만 연약해져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는 도구로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 같다.
장소를 옮겨 시립교회로 갔다.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에서 건물들 뒤편으로 높은 탑이 솟아있는 시립 교회(Stadtkirche St.Marien)는 비텐베르크에서 가장 오래 된 교회이며, 도시의 중심이 된 교회이다. 슐로스 교회(Schlosskirche)가 95개조 반박문으로 이름이 알려져 비텐베르크를 대표하는 교회가 되었지만,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시립 교회에서 결혼을 했고 이후 주기적으로 설교를 했던 교회이기도 하다. 내부에서는 교회 전면의 제단이 눈에 띄었다. 화려한 장식은 없으나 제단에 그려진 루카스 크라나하 ((Lucas Cranach) 의 성화가 일품인 교회이다.
교회를 둘러 보고 나온 후에 바로 교회 앞 마당에서 준비해온 점심을 먹었다. 아이들은 참치가 들어있는 주먹밥을 갖게 되면 마치 무슨 승리를 한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우리로선 그렇게도 좋은가 싶지만 지켜 보는 것 만으로도 괜히 기뻤다. 점심 식사 후에 베를린 교회 청년들에게 “Set Me Free”를 하도록 했다. 짧은 기간에 배웠지만 잘 소화했고 열심히 해 주었다. 이들도 앞으로 이 무언극을 도구로 삼아 전도와 선교에 힘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시립교회 바로 옆에 있는 교회에서 영어로 예배를 드린다고 우리를 초청해 함께 예배를 드렸다. 관광객을 위해 영어 사역을 하시는 분이 준비한 예배 모임이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비텐베르크에 머물 때 거주했던 집은 현재 루터 하우스 (Lutherhaus)라는 이름의 박물관이 되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비텐베르크의 종교개혁 관련 유적 중 한 곳이다. 루터 하우스에 가면 마치 궁전처럼 거대한 건물에 일단 놀라게 된다. 루터가 이렇게 부자였던 것이 아니라 원래 이 건물은 수도원 건물이었고, 마르틴 루터는 이 곳의 수도사로서 건물 일부에 거주하고 있었다. 종교개혁 이후 수도원이 문을 닫자 건물은 비텐베르크 대학 학생들의 기숙사로 사용되었고, 루터는 그들을 가르치고 어울리며 이 건물에서 계속 지냈다고 한다.
세 번의 공연과 종교 개혁의 주요지를 둘러보고 숙소에 돌아오니 7시 20분이 되었다. 베를린 중앙교회에서 마련해 주신 맛있는 스테이크와 소세지, 그리고 물김치, 파무침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그릴 구이를 해주셔서 팀원들 모두 정말 맛있게 먹었다. 내일 난민 사역 때 힘내라고 주신 것이라 생각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잘 먹었다. 여집사님들은 밥을 하지 않고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하시면서 잘 드셨다. 오늘 하루도 주의 은혜로 만족하게 마무리를 했다.
베를린 사역 여섯째 날
오늘은 난민 사역을 가는 날이다. 독일의 난민 정책은 난민을 많이 받아들이는 쪽이지만 현재 전쟁을 겪고 있는 국가의 난민들에게 우선 순위를 준다고 한다. 독일의 난민들은 세 그룹으로 나누게 되는데 언어에 따라 구별이 된다. 페르시아 언어를 사용하는 그룹, 아랍 언어를 사용하는 그룹, 그리고 터키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구별된다고 한다. 현재 독일 인구 총 8200여 만 명 중에서 외국인 비율은 720여 만 명, 그 중에서도 터키인은 70%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급격한 경제 성장을 하던 독일은 노동력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사이에 엄청난 수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독일에 들어왔고, 특히 인접국 터키에서 값싼 노동력이 대규모로 유입되었다고 한다.
60년대에 이렇게 많은 터키인들이 몰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소그룹의 믿음의 공동체는 있지만 터키어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는 없다고 한다. 더 어려운 점은 요즘에 몰려오는 난민들이 대부분 터키인들이 운영하는 사업체에서 일을 해야하는데 기독교인이라면 채용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터키인들을 전도할 수 있었던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독일 교회가 놓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 본다. 물론 터키인들의 폐쇄성도 있었지만…
우리는 난민 사역을 떠나기 전 엄마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우리도 기도를 많이 하고 나갔다. 아랍인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가서 공연을 통해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반대 세력들도 있기 때문이다. 난민 캠프는 일반인들의 입장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윤 선교사님이 아랍 지역에서는 공연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쉽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허만 프라치 역에서 밖으로 나오니 공터가 있었다. 보통은 장사하는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장사를 하는데 오늘은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자리를 잡고 공연을 시작했다. 의외로 반응이 좋았고 전도를 하니 잘 받아 드렸다. 우리는 부지런히 전도지를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한 청년은 무슬림과 기독교의 차이도 물어보았고 예수님이 어떻게 하나님이 될 수 있느냐고 질문도 했다. 무슬림이 기독교로 개종을 못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았다.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 대답했고 독일어 사영리를 사용하여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다.
역 앞에서 공연을 하고 나니 구름이 잔뜩 끼였다. 땅밟기 기도를 하면서 아랍 교회로 가는데 도중에 또 다른 빈터가 나와서 공연을 시작했다. 이 곳도 천막치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아마도 오후에 비가 온다고 하니 아예 안 나온 것 같았다. 공연 중간 쯤 되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공연을 중단할 수 없어 계속했는데 청중도 요동이 없이 자리를 지켰다. 비가 멈추기를 간절히 기도했더니 비가 멈췄고 우리는 모든 공연을 다 할 수가 있었다. 엄마들의 대포 기도가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선교사님은 계속해서 공연 자리가 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하셨다. 주님은 우리의 마지막 거리 공연을 위해 자리를 주셨고 우리는 열심히 온 몸으로 복음을 전했으니 주님께서는 분명히 열매를 맺으실 것을 믿는다.
아랍교회가 요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전쟁 국가가 아닌 나라에서 난민 신청을 할 때에는 종교의 박해를 이유로 신청하다고 한다. 그래서 때때로 기독교인이 아닌데도 속여서 난민 신청을 하고 그 것을 증명하기 위해 교회를 나오기 때문에 교인들 간에 서로 불신이 있다고 한다. 윤선교사님의 교회도 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독일 교회를 빌려 사용하고 있는데 주일에는 시간 확보가 어려워 토요일에 아랍 예배는 드리고 있었다. 약 10명의 난민들과 독일인들 서너 명을 모시고 공연을 시작했다. 그 중에는 이집트에서 8개월 전에 도망을 나와 난민 신청을 한 콥틱 교인도 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간증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고 기도 제목을 물어보니 자신의 비자 문제보다 이집트에 있는 콥틱 교도들을 위한 기도를 부탁해서 우리 모두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가 끝나니 다른 아랍 형제가 자신의 조카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많이 아프다면서 기도를 부탁하면서 자신은 이 아이를 데리고 교회로 나와 기도를 받고 싶은데 병원에서 위험하다고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시 공간을 초월하시는 주님을 믿으며 이를 위해서도 간절히 기도를 했다.
내일은 페르시아 언어를 사용하는 난민 교회에 가서 공연을 하며 복음을 전한다. 아픔이 가득한 이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넘치기를 기도한다. 우리 아이들은 지속적인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힘차게 잘하고 있으며 몸이 아프면 자신이 스스로 기도하고 나음을 입었다고 간증까지 한다. 주신 은혜가 참으로 크다.
2017 여름 선교 마지막 날
주님의 인도하심이 사역 현장마다 확연히 느껴지는 가운데 선교의 마지막 현장이 우리가 머무는 교회였다. 이 교회는 독일 교회로서 한인 교회, 이란 교회, 앙고라 교회, 그리고 페르시안 교회가 있다. 우리가 머무는 동안도 마음 편하게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어제 저녁에는 오늘 예배를 위해 남자 팀원들이 머무는 방을 정리하고 짐을 여자 팀원들의 방으로 옮겼다. 뉴라이프에서 머물면서 선교를 하는 팀들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주일에만 한번 정리해 주면 되는데 그들은 금요일과 주일 두 번을 깨끗히 정리해 주어야 한다. 쉽지 않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오전 10시에는 독일 교회 예배에 참석해서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공연도 했다. 바디 워십으로 시작하여 이어진 무언극은 독일 성도들의 눈시울을 적셨고 우리 아이들이 온 몸으로 전하는 복음은 그대로 전달되었다. 처음 독일 목사님이 우리를 소개할 때 회중가운데 있었던 "틴 에이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의구심의 기운이 순간에 사라졌다. 우리는 복음을 가감없이 전했고 함께 주의 백성으로 살아갈 것을 도전했다. 우리 공연이 끝나자마자 목사님은 언제 다시 올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 어떤 여자 성도님은 본래 다른 교회를 다니시는데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이 교회로 오게 되었는데 우리의 공연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선물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점심으로 집사님들이 마련해준 샌드위치를 먹고 오후 한 시에 있을 페르시안 예배를 준비했다. 아이들은 한시간 반 남짓 주어진 휴식 시간에 모두 낮잠을 잤다. 예배 15분 전에 깨워 다시 기도로 준비하고 페르시안 예배에 갔다. 모두 페르시아 언어를 사용하는 중동 사람들이다. 난민이 남자들이 많은 때문인지 참석자의 대부분이 남자들이었다. 무언인가에 눌린 것 같고 무표정의 얼굴들을 볼 수 있었다. 예배의 찬양은 동영상을 보면서 따라 부르고 찬양을 인도할 반주자도 없는 듯 했다. 새로운 형태의 예배 가운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20분이었다. 무언극 두개만 해도 모자란 시간이었지만 주님께 맡기고 무언극으로 첫 장을 열었다. 팀원들의 온 몸의 복음은 그대로 전달되었고 분위기는 변하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는 박해를 피해 망명을 신청하여 정착한 사람들도 있지만 난민 판정을 받기 위해 박해받는 기독교인이라고 속이고 온 사람도 있다고 했다. 이들이 예배에 참석하는지를 목사님은 한 달에 한번씩 보고해야 한다.
이란 목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렇게 온 사람 중에 약 70% 정도가 주님을 영접하게 되고 교회에 정착한다고 하셨다. 성령님이 운행하심이 강하게 느껴져서 더 할 수 있는지를 즉석에서 요청했을 때 이란 목사님은 기쁨으로 응답해 주셨다. 우리 아이들은 성령님이 주시는 완전한 자유 안에서 맘껏 표현을 했고 그 메시지는 참석한 성도들의 마음을 파고 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늘은 한달에 한번씩하는 성찬식이 있는 날이어서 침례를 받은 우리 팀원들도 함께 동참했다. 주님께서는 선교의 마무리를 주의 만찬에 동참함으로 마칠 수 있게 해주셨다. 나 나름대로는 주님이 우리의 모든 사역을 받으셨다고 인증을 해 주시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20일동안 수고해 주신 팀원들께 많은 감사를 드린다. 훈련을 잘 감당해내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그들을 주께서 기억해 주시고 평생에 귀한 추억으로 간직하게 하시고, 이 날들을 계수하셔서 이들의 삶을 축복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20일간 팀원들을 정성스럽게 섬겨주신 집사님들에게도 마음 깊숙이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영광은 오직 주님만 받으시길!!!